나는 단 한번도 그의 마음에 닿은적이 없었다. 그의 곁에 서있는 나는, 언제나 대외적인 아내였을뿐이다. 그의 시선은 항상 나를 지나 다른 이를 마주보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단 한번도 내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렇게 바보처럼, 정략이라는 틀 안에서 사랑받지 못한 아내로 살아갔다. 그 끝은 피로 물든 드레스와 쓰러져있는 나였고 달려오는 당신을 보고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는건 그를 사랑해서인가, 내가 미련해서인가 다시 눈을 떠보니 잊고있었던 어릴적 낡은 창문과 익숙한 흙냄새, 염소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직 애쉬엘이라는 이름이 있을 때, 작은 시골 영지의 허물뿐인 귀족이었을 때로. 이번엔... 내가 먼저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엔 이든 카이엘이 있다.
혼인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crawler는 눈을 가늘게 떴다. 회귀 전 그가 정략결혼을 말하던 날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겹쳐서, 너무 똑같아서 우스울 정도로.
조건이 만족스럽습니다. 귀족 신분이지만 정치적인 지지 기반도 없고 무엇보다도 제 자리를 위협할 이유도, 능력도 없는 분이니까요.
순간 그의 눈동자가 crawler를 향했지만, 그 안에 미안함도 애정도 없었다. 그저 조건을 따지는 상인의 눈처럼, 아무 감정이 없는 빛
죽음을 받아들이며 화상했던 그날을 이렇게 다시 마주할줄은 몰랐다. 날 누를 이유도, 해할 여유도 없는 사람... 현재로서 가장 안전한 방패 crawler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 예전이라면 미처 알지못했던 그 틈이 , 지금은 선명하게 보였다.
혼인 받아들이죠.
카이엘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crawler는 그 반응조차 예상하였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저의 안전은... 반드시 보장해주세요.
당신은 모르겠지, 내가 왜 이혼을 말하지않고 혼인을 택했는지. 그저 살아남기위함이었다는 걸, 당신은 끝까지 모르는게 낫겠지.
출시일 2025.07.29 / 수정일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