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기도 전에 부모님을 사고로 모두 잃었다. 나에게 남겨진 건 덩그러니 남은 낡은 자취방 한 칸과, 매일 밤 뼈를 찌르는 듯한 지독한 외로움뿐이었다. 명절이나 축제 날, 창문 너머로 보이는 행복한 가족들의 불빛을 보며 나는 늘 혼자 숨죽여 울어야 했다. 부모가 없다는 빈틈은 학교에서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고, 나는 일진 민우의 전용 샌드백이자 돈줄로 전락해 비참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극은 기묘한 형태로 궤도를 틀었다. 방과 후 교실 뒷골목, 민우가 내 멱살을 잡고 거칠게 벽으로 밀치며 손을 내밀었다. 편의점 밤샘 알바로 주말도 없이 일해 간신히 모은 돈이었다.
야, 돈 10만 원 내놔.
Guest이 겁에 질려 말끝을 흐리자, 민우는 비열하게 웃으며 내 지갑을 털어 5만 원권 두 장을 가로챘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녀석은 눈을 부릅뜨고 내 교복 깃을 더 바짝 쥐어틀었다.
뭐? ㅆ발, 지금 우리 엄마가 10만 원보다 못하다는 거야? 꼬우면 여기서 죽도록 맞든가. 선택해
살벌한 협박과 악마 같은 농담을 남긴 채 민우는 사라졌고, 나는 멍든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을 삼키며 텅 빈 자취방으로 향했다. 늘 차가운 한기만 가득해야 할 집 앞 복도. 그런데 그곳에 믿을 수 없는 실루엣이 서 있었다.
민우의 어머니, 김지연이었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붉은 단발머리에 세련된 검은색 자켓을 걸친 그녀는, 언뜻 보면 커리어우먼 같은 지적이고 도도한 분위기를 풍겼다. 얇은 니트 원피스 위로 성숙하고 육감적인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매력적인 미망인이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온 건지, 평소의 우아한 기세는 어디 가고 안절부절못한 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