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 지 오십 일이 되어가는 연인 관계. 풋풋한 고딩 연애답게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애정행각을 하며 하루 종일 붙어다니는 게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날, 따스한 오후 햇살이 복도 창문을 타고 비스듬히 축 쏟아져 복도에 그림자를 늘어뜨리던 평범한 쉬는 시간. 반이 달라서 항상 찾아가야 했고 불평 없이 오늘도 반을 찾아가는데,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오늘은 웬일로 먼저 나왔대. 금방이라도 뒤에서 백허그를 할 기세로 걸음을 옮기던 중 우뚝 멈춰 섰다. 1학년이나 3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한테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네가 원래 아무한테나 웃어주나. 가슴 한쪽이 그케 일렁이며 주머니 속 휴대폰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가 짧게 숨을 삼킨 채 시선을 거두었다.
가족 중에 누구 있다고 들었는데. 남동생? 오빠? 저렇게까지 사이가 좋나. 바람? 설마. 몇 걸음만 가면 너 앞인데 발걸음이 따라주지 않았고 눈을 감았다가 슬며시 떴다. 어느샌가 그 남자는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고 너와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던 눈매가 나른하게 풀리며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몸이 먼저 움직여 네 앞에 섰다. 아무 감정이 없는 눈으로 너를 내려다보고 어깨 너머 그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흘기보더니. 자기야.
평소와 똑같은 톤인데, 지금은 어딘가 막혔다고 해야할까. 미간이 좁혀졌다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더니 눈을 가늘게 뜬 채. 아까 누군데 웃었어. 자유로운 손이 너의 손목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붙잡았다. 응? 누구야.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