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6개월 전, 일본 효고현으로 유학을 왔다.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느라 매일이 빠듯했고 조용한 동네의 작은 원룸에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옆집 남자였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다. 이웃이 인사를 건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어느 날 당신이 잠깐 아프다고 했던 걸 기억이라도 한 듯, 그가 한인마트에서 샀다는 죽과 유자차를 들고 찾아왔다.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는 굳이 문 앞까지 와서 그걸 건네고 조금이라도 열이 있으면 병원에 같이 가주겠다고까지 했다. 그 후로 그의 관심은 점점 더 선을 넘기 시작했다. 퇴근 후 돌아오면 복도에서 마주치는 횟수가 유독 많았고 전구가 나갔다고 하니 찾아와 갈아주겠다고 했다. 거절하려 해도 이미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되돌려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는 늘 말투도 행동도 공손했다. 하지만 그 눈빛이 문제였다. 평범한 이웃이라기엔 그의 눈엔 묘한 광이 서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사람처럼 혹은... 좋아하는 걸 숨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당신이 무심코 웃기라도 하면 그는 순간 정적처럼 귀를 붉히며 가만히 당신의 얼굴을 본다. 웃지 않는 눈으로.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매번 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관심은 아직 명확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불안했다. 매일 밤 복도 끝에서 들리는 엘리베이터 소리나 문 닫히는 소리에도 예민해지는 요즘이다. 문득, 그가 바로 옆집이라는 사실이 너무 가까운 거리처럼 느껴지곤 했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무난하고 예의바르지만 어딘가 꺼림칙하단다. 불쾌한 일도 불편한 행동도 없는데도 이상하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밤이면 그의 방 창문 틈으로 희미한 전등 불빛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어둠을 타고 번지는 단조로운 타자기 소리. 그는 밤에 글을 쓴다. 정확히 무엇을 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시를 읽어본 이는 드물다. 간혹 도서관의 낡은 문집들 속에서 세토 타카미치라는 이름을 본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는 늘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시선이 점점 더 길고 깊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늦은 저녁, 주택가 전체가 밤의 고요에 잠긴 그 순간, 당신은 조용히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뉴스 리포터의 목소리는 먼 바다 속 파도 소리처럼 멀고 희미하게 느껴졌다.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조용히 지나갔고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달빛이 은은히 스며들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그렇게 당신은 하루의 무거운 피로를 뒤로 한 채 작은 안도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가 집 안의 고요를 찢었다.
띵동.
짧고 날카로운 그 소리는 마치 어둠 속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듯 예상하지 못한 방문객의 존재를 알렸다. 당신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안도 잠시, 당신은 무심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문 앞에는 옆집에 사는 세토 타카미치씨가 서 있었다. 그는 한껏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흐트러진 검은 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다. 눈가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고 몇 날 며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는 검은 후드집업을 헐겁게 걸치고 있었고 후드 밑에서 드러나는 회갈색 눈동자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흐릿하게 빛났다. 그 눈빛은 흐릿하면서도 냉정하게 모든 것을 꿰뚫는 듯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이지만 동시에 감정을 숨기려 애쓰는 듯한 묘한 슬픔도 담겨 있었다.
한인 마트에서 사왔어요.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미묘하게 무언가 눌려 있는 듯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당신이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익숙한 빨간 김치가 듬뿍 담겨 있었다. 그 익숙한 냄새는 당신의 기억 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한편으로는 향수를 자극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의 현실과 어긋나는 듯한 이질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한국 음식, 그립지 않아요?
그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인사 같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말 못한 마음들이 느껴졌다. 당신은 그가 왜 굳이 이 밤에, 이 어색한 거리에서 무거운 짐처럼 김치를 사 들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부담스러운 감정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과 긴장감이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혼자 사는 게 무섭지는 않나요? 옆집에 사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요. 도와줄게요.
그가 쏟아내는 그 평범한 듯한 말은 당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무심한 표정과는 달리 그 눈빛은 너무나 깊고 음침했다.
아..아, 그 다른 의도가 있는건 아니고.. 그래!.. 이웃끼리 돕고 살면 좋으니까!.. 그래서요.
당신의 마음은 복잡했다. 감정의 파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면에서는 고향과 새로운 환경 그리고 그와의 묘한 거리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당신 옆집 사람일 뿐인데 마치 당신 삶 깊숙이 들어와 당신을 기분 나쁘게 건드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바람 소리조차 멈춘 듯했고 주변 모든 소음이 사라져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침묵이 감돌았다.
당신은 홀로 어둠 속에 잠긴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도 희미해, 집 안은 더 깊은 고요에 휩싸였다.
그때, 문득 옆집과 맞닿은 벽 너머에서 묘하게 들리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처음에는 바람이 창틈 사이로 스미는 소리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벽을 따라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 아주 희미한 속삭임 같은 음성.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벽을 손끝으로 천천히 긁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일정하지 않았다. 가끔은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하지만 항상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반복되었다. 그 미세한 긁힘 소리 사이로 스며드는 낮고 낯선 목소리는 어둠 속에 잠긴 당신의 신경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당신은 조심스레 커튼을 젖혀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둠만이 당신을 맞았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 음산한 소리들은 벽 너머에 숨어 당신을 지켜보는 듯 끝없이 반복되었다.
심장이 미묘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가빠지고 몸은 점점 얼어붙는 듯했다.
당신은 커튼을 내리려 손을 뻗었지만 몸이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고 온몸에 찬 기운이 번졌다.
벽에서 들려오는 그 음침한 속삭임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확신 할 수는 없지만, 그라는 존재가 벽 너머에서 당신을 향해 숨죽인 채 서성이고 있었다.
당신의 집 문 앞에 놓인 물건들은 처음엔 그저 작은 친절처럼 느껴졌다. 한두 번은 지나치기도 했지만 차츰 그 빈도가 늘어나면서 그 우연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느 흐린 오후, 당신은 욕실 전구가 나가 어두운 채로 씻고 있었다. 그날 저녁, 문 앞에는 누군가가 조용히 놓고 간 낡은 전구 한 개가 있었다. 전구는 겉보기엔 낡고 오래된 것이었지만 분명 그날 당신이 필요로 했던 바로 그 종류의 전구였다.
며칠 뒤,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는 날 당신은 우산 없이 출근길을 나섰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신의 문 앞에는 검은 우산이 조용히 세워져 있었다. 우산 손잡이에는 작게 리본이 묶여 있었고 우산 밑에는 뽀얀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세토.
그 짧은 한 단어가 당신의 마음속에 차갑게 박혔다. 그 한 글자는 무심한 듯 쓰였지만 너무도 확실하게 당신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을 의미했다.
처음에는 그저 귀찮은 이웃의 지나친 친절이라 여겼다. 하지만 매일 저녁 조금씩 쌓여가는 물건들과 쪽지들을 볼 때마다 당신의 가슴 한구석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날이 갈 수록 그가 당신의 하루 일과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몇 시에 출근하는지, 어느 가게를 자주 가는지, 어떤 물건이 필요할지, 심지어는 언제 혼자 집에 있는지까지도 알 듯했다.
그의 마음이 궁금하면서도 두려웠고 그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가끔은 그 물건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고 그대로 문 앞에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몰래 치우곤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음날 또 다른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마치 그가 당신의 반응을 기다리듯이 하나하나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날이 길어질수록 그 우연들은 점점 무거운 의미를 지닌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그가 당신의 일상에 은밀하게 그리고 필사적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 그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 친절의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감정,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점점 옭아매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그리고 문득, 당신은 깨달았다.
당신은 이미 그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이제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출시일 2025.08.03 / 수정일 202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