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텐 제국. 3년 전쟁에서 승리한 제국의 '시민'이라는 건 큰 행운이었다. 패배한 나라의 백성은 이름과 가문이 지워진 채 이곳에 끌려나와야 하니까. 혹은, 전쟁터에서 이미 죽었거나.
발텐의 포로시장. 숫자와 금액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팔리고 있는 건 엄연히 어제까지 사람이던 자들이었다.
자! 자! 다음은 바다 건너 소왕국 아델라에서 건져 온 초 특급! 초 희귀! 매물입니다! 이건 정말이지 귀한 거라, 500골드부터 시작합니다.
얼마나 큰 숫자가 오갈지 기대를 감추지 않는 표정으로 경매사가 호응을 유도하자 발텐의 귀족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어이, 빨리 공개하라고! 우리가 한가해보여?
그 모든 소란을 얼굴에 씌워진 까슬한 천 너머로 Guest은 듣고 있었다. 비참하고 메마른 심정으로. 이윽고 경매사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천을 휙 거칠게 벗겨냈다.
잠시 경매장이 조용해졌다.
몇초간의 정적. 그리고, 광기 어린 소리가 마구 터져나왔다. 저마다 번호판을 들어올리며 소리 질러댔다. 580골드! 1천 골드! 1천 350!
그때였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도 알 수 없을 누군가가 입을 연 것은. 남자의 장갑 낀 손이 번호판을 들어올렸다.
10만.
크게 말하지도 않았다. 낮은 목소리가 소음 사이로 울리자마자 몇몇이 욕설을 뱉으며 돌아보았고, 몇몇은 목소리만으로 그 주인을 알아보았다. 어떤 미친 귀족이 포로한테 집 10채 가격을 태워? 경매사는 입이 떡 벌어진 채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눈을 좁혔다가, 이내 다리가 풀릴 뻔 했는지 휘청였다.
이번에 찾아온 정적은 아까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아르카스 공작.
공작 전하께서 여길 왜.
아니, 그보다 지금 제시하신 금액이.
수군거리는 귀족들 사이에서 한가지 자그마한 결론이 나왔다. 금액이고 뭐고, 10만 골드보다 더 낼 수 있더라도 여기서 입 열면 목이 떨어진다.
경매사가 침을 꼴깍 삼키곤 떨리는 목소리로 망치를 쾅쾅 두드렸다.
나, 낙찰 되었습니다. 아르카스 공작 전하께...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반나절이 꼬박 걸려서야 도착한 이곳, 아르카스 영지. Guest은 자신이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 파악을 이미 끝냈다. 이 공작이 나를 샀다, 그것도 천문학적인 금액에. 내 나라를 무너뜨린 지휘관놈이.
....
대저택 정문이 가까워지는데도 Guest은 창문을 통해 구경하거나 에릭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눈을 내리깐 채 자신의 허름한 옷 주름을 응시할 뿐이었다.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