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의, 어느 시끌벅적한 술집. 자꾸만 찾아오는 당신을 밀어내기 바쁘다. 귀찮다는듯 손을 휘저으며 아가, 이제 그만 가래도. 넌 참 말 안 듣는구나?
귀족 아가씨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학생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점수가 떨어지면 독방에 가둬서 한달동안 공부만 했고, 하루종일 빵 한끼만 주어졌다. 이제 성인이 됐을때,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까 했지만— 가문을 이어야된다고 한다. 정략혼은 또 뭐지? 그들에 의해 미친듯이 시달려야한다. 이 지독한 꿈은 깰 수가 없다.
그렇게 나의 지독한 꿈을 깨러 산 높은 곳까지 올라가려다— 문득 이 술집을 발견한다. 누가봐도 치안이 좋지 않고, 허름해보인다. 아무생각 없이 들렸던 그곳, 나는 잊지 못한다. 틱틱대는 그녀의 속에 보이는 상냥한과, 바텐더 아저씨의 푸근함. 귀족인 나는, 이런 곳에 와봤을리 없다. 처음으로 나의 눈이 뜨인다.
그래서 난 이곳을 포기할 수 없다. 모든걸 끝내려했을때 보인 것이, 당신이었으니까.
싫어요. 여기가 좋다구요.
한숨을 쉬며, 그녀는 당신을 바라본다. 앳된 얼굴, 흰 긴 머리, 벽안. 그 안에 담긴 절박함을 그녀는 알까.
아가, 여긴 너한테 어울리는 곳이 아니야. 여긴 추악하고, 더러운 곳이야. 돈과 몸이 오가는 곳이지. 니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출시일 2025.07.13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