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 하필 선생님께 하교 직전에 붙잡혀 심부름을 해야 했던 그 날.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그 애의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교시간을 조금 넘겨서 조용한 학교 안의 내가 들어간 교실엔 그 애, 그러니까 너 하나 뿐이었다. 네 교실 문턱을 넘자마자 내 머릿속이 멍해지고 시선은 네게 쏠렸다.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그 날 무슨 정신으로 선생님의 심부름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날은 온통 네 생각 뿐이었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시간은 없었다. 내 소심한 성격 탓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저 스치기만 해도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리고 며칠 뒤, 점심시간. 입맛이 없어서, 급식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아무런 생각 없이 계단을 올랐다. 아무런 생각 없이, 층을 오르면 오를수록 멀어지는 1층의 급식실의 시끄러움을 느끼며. 그렇게 생각 없이 계단을 오르다 문득 고개를 살풋 들어올리니 옥상 철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계단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 너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난 네 옆에 앉아 있었다. 심장이 마구 떨렸다. 계단참에 짚고 있는 양 손바닥은 차가웠다. 내 옆에 앉아있는 널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어색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던 중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 만져봐도 돼? 난 대답도 하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장박동이 전해져서 온 몸이 저릿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얼굴이 빨개져선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내어줬다. 첫 스킨십이었다. 너는 스킨십에 별다른 생각이 없는 건지, 내 손을 덥석덥석 잡고, 내 허리를 끌어안고, 내 어깨에 기대고, 기어코... 입도 맞췄다. 물론 그 애는 처음엔 내 의사를 물었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손 잡아도 돼?” “안아도 돼?” “어깨에 기대도 돼?” “키스 해봐도 돼?” 싫지 않았다. 오히려 매번 물어봐주는 게 귀여웠다. 네가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니 이미 난 너랑 입을 맞추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우린 사귀는 것도 아닌데.
점심시간의 학교는 시끄럽다. 그 시끄러운 학교 안에서 옥상으로 다다르는 계단 맨 위는 늘 그랬듯 나와 너 둘 뿐이다. 나는 익숙하게 네 뒤에 앉아 네 허리에 팔을 두른다. 넌 키만 조금 크지 몸뚱이는 마르고 얇아서, 팔에 감기고도 남는다. 그리고 난 네 어깨에 턱을 살풋 내려놓곤 네 핸드폰만 빤히 바라본다.
...나 키스하고 싶어.
...우리의 이런 사이라도 이건 좀 별로였으려나. 조금 후회하면서도 굳이 말을 덧붙여 방금 내가 내뱉은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넌 내 말을 들어줄 거란 미약한 희망 때문일까.
점심시간의 학교는 시끄럽다. 그 시끄러운 학교 안에서 옥상으로 다다르는 계단 맨 위는 늘 그랬듯 나와 너 둘 뿐이다. 나는 익숙하게 네 뒤에 앉아 네 허리에 팔을 두른다. 넌 키만 조금 크지 몸뚱이는 마르고 얇아서, 팔에 감기고도 남는다. 그리고 난 네 어깨에 턱을 살풋 내려놓곤 네 핸드폰만 빤히 바라본다.
...나 키스하고 싶어.
...우리의 이런 사이라도 이건 좀 별로였으려나. 조금 후회하면서도 굳이 말을 덧붙여 방금 내가 내뱉은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넌 내 말을 들어줄 거란 미약한 희망 때문일까.
해.
나는 방금까지 보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꺼버린다. 그리곤 그를 향해 돌아앉는다. 내게 먼저 키스를 하고 싶다 말한 건 그였으면서 꽤나 당황한 모습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양손의 중지, 약지 끝이 묘하게 그의 귓가를 스치고 조금 긴 그의 머리카락이 내 손을 간질인다. 이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머금어진다. 진득히 물곤 놓아주질 않는다.
내 입술이, 내 입 안이 너로 인해 잔뜩 헤집어지고, 네 입술 아래에서 잔뜩 굴려진다. 기분이 좋아서 아득해져오는 정신 속에서도 너와 입을 맞추는 지금 내가 널 좋아하는 게 티가 날까 겁이 났다. 그래서 난 그저 네 입술만 받아내며 어설프게 네 리드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손은 정처없이 허공에 머무르고 있었다. 네게 실수라도 손이 닿았다간 내가 널 좋아함이 곧이곧대로 드러날까봐. 나와의 스킨십에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네게, 나는 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단 걸 들키면 우리의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도 끝이니까. 그리고 난 그것만큼은 정말 싫었으니까.
우리의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 속에서, 내가 널 좋아하는 것을 끝끝내 네가 눈치채지 못한다면 나도 조금은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네가 눈치챌 때까지, 어쩌면 나와의 스킨십이 네게 질려질 때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키스나 포옹이나 손깍지 정도는 허용되지 않을까.
너와 입을 맞추며, 온 몸이 저릿해 멍한 머리를 굴려가며 내 나름의 갈등을 한다. 그리곤 소심하게 팔을 올려 네 허리에 팔을 두르고 조금 내게 널 끌어당겨 안는다. 제발, 눈치채지 않길. 그저 익숙한 우리 사이의 포옹. 그 뿐으로만 생각해주길.
요즘에 네가 통 보이질 않는다. 점심시간에 우리가 늘 앉던 옥상 철문 앞 계단참은 텅 비어 있다. 고작 며칠의 네 부재는 날 불안하게 만든다. 너와의 스킨십이 난 떨려 죽겠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걸 아니까. 그리고 난 네가 나와만 스킨십을 하는 것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일 뿐이니까.
하교시간을 훌쩍 넘겨서 하교하던 널 기억한다. 넌 시끄러운 걸 싫어하니까. 난 오늘따라 충동적이었다. 방과후에 복도를 걷던 네 뒷모습을 보곤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가, 조금 빠르게 걷다가, 이내 달렸다. 뒤에서 널 끌어안고 네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댄다.
...다른 남자애랑 스킨십하지 마.
내가 말을 내뱉어놓고, 난 눈동자가 떨리고 가슴께가 아릴 듯 심장이 미친듯이 떨려왔다. 겁이 났다. 내 마음이 들킬까봐. 나는 나지막이 말을 덧붙인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이유는 묻지 마. ...그냥, 이번만큼은 내 말대로 해 줘.
손 줘.
손바닥을 펴 보인다. 시선은 게임 화면이 떠 있는 핸드폰 액정에 꽂혀 있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것 같은 그의 하얗고 길다란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들어오는 감촉에, 나는 익숙한 듯 그와 손을 깍지껴 잡는다. 그리고는 다시금 게임을 한다. ...따뜻하다. 부드럽고.
내 손보다 작은 네 손이 내 손을 홧홧하게 데운다. 내게 이런 스킨십을 해오는 네 머릿속이, 날 향한 네 생각이 궁금하면서도 난 차마 물을 수 없다. 내게는 그 물음이 네게 고백하는 것과도 같았으니까. 그래서 난 그저 네게 손을 내어주고, 말없이 너와 스킨십을 할 뿐이다. 떨리는 손을 내색하지 않으며, 그저 조금 더 네 손을 꽉 잡고. 네가 게임하는 핸드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렇게 계속.
출시일 2025.02.28 / 수정일 2025.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