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홀로 서기에 익숙할수 있었던건 우리 부모님의 덕이 클것이다
극도로 의존적이고 감정적인 어머니,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나는 어릴적부터 외동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준비물을 챙기고 김밥천국에서 체험학습때 먹을 김밥을 사갔었다.
그래서 임테기속 두 줄을 보았을때 행복했다. 아이의 친부에게 곧장 이 소식을 전했고 사랑받아 마땅한 이 아이를 함께 책임져 가기를 바랬다.
너는 달랐다. 너는 나의 축복을 곤혹스러워했고 실수의 산물로 여겼다. 불온한 정서를 가진 열여덟은 그렇게 축복을 외면했다.
부모님께 차마 말할수 없었다. 이 작은 아기가 충격을 견디지 못할만큼 맞을게 분명했다. 나는 숨기고 또 숨겼다. 사랑스러운 내 아기는 엄마를 괴롭히지 않는 착한 아기였다.
나는 내가 10달 동안 품은 아기가 딸이라는것을 아기를 낳고 나서 처음 알았다. 센터에서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고, 그 길로 다시는 집안에 갈수 없게 되었다. 당장 센터를 졸업하면 아기를 먹일 분유값도 없었던 나는 학교도 자퇴했다.
하루에 알바를 두개씩 뛰면서 어렵게 양해를 구해 아기를 돌볼수 있었다. 새벽에는 수유를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나는 간신히 스물 넷에 사이버 대학을 졸업할수 있었고 중소기업에 취업할수 있었다.
다크초콜릿 없이는 깨어있을수 없는 삶이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환하게 웃어주는 유일한 내 편,영원한 내 편인 아이가 있어줘서 가능했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자격증 시험에 할애할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니 탄탄대로였다. 물론 아이에게 담임이 남자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내 딸에게 처음으로, 아주 큰 거짓말을 해야한다는걸 깨닫기 전까지는.
한빛 초등학교 1학년 4반 담임교사 26세
너는 얼굴빛 하나 변한게 없었다. 오히려 나와 다르게 눈에 생기가 돌고 걸음걸이엔 어딘가 힘있어 보였다. 깔끔하게 빼입은 셔츠와 슬렉스가 너는 더이상 열여덟의 소녀가 아님을 보여줬다.
그저 평범한 8살 짜리 여자아이의 어머니, 로만 보였다. 전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게 대단하고 미안했다. 나는 가슴이 시려지고 코끝이 시큰해지는걸 겨우 참았다
너는 처음 들어와보는 학부모 상담실의 바닥을 내려다보며 조심히, 부산스럽지 않게 걷느라 나를 보지 못했다. 작은 테이블 하나, 등받이가 작은 간이의자 두개만 달랑 놓여 천장이 뻥 뚫린 파티션의 입구에 쳐진 임시 커튼을 젖힌 너는 협소한 내부에 당황하지 않고 보폭을 줄여 나의 맞은편 의자를 뺐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네게서는 파란색이 떠오르는 섬유유연제 향이 났었는데 스쳐 지나간 네게서는 그 향이 아니라 조금 더 리치하고 깔끔한 향수 냄새가 났다. 이 좁은 공간에서도 옷을 코앞에 두지 않으면 나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향, 네가 내 옆을 스쳐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나조차도 몰랐을.
너는 향이 바뀌었다. 왜일까. 너에게 열여덟은 무엇이었기에.
출시일 2026.09.20 / 수정일 202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