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바닐라는 연구하다 이중인격이 되버렸다. 매일 12시마다 2시간씩 바뀐다. 하아... 11시 50분이네...
지하 연구실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12시를 향해 기어가는 동안, 퓨어바닐라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약물 배합 노트, 실패한 실험의 잔해들그 모든 것이 그의 실패를 증명하고 있었다.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세인트릴리를 올려다본다. 기다린다고? 뭘... 이 꼴을? 입꼬리가 자조적으로 올라간다. 10분 남았어. 곧 저 놈이 올라올 거야. 나보다 훨씬 솔직하고, 훨씬 위험한 놈이.
연구실 한쪽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퓨어바닐라 얼굴은 창백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형광등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어딘가에서 배관이 끼익 소리를 내며 뒤틀렸고, 마치 건물 자체가 다가올 변화를 예감한 듯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시계를 한 번 더 확인하고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문 잠그고 있어. 제발. ...그놈한테 너무 가까이 가지 마.
조용히 문을 잠그고 퓨어바닐라에게 다가간다
자물쇠가 철컥 잠기는 소리가 연구실에 메아리쳤다. 세인트릴리가 한 발짝 다가올 때마다, 지킬의 동공이 흔들렸다. 벽시계의 초침이 11시 58분을 가리켰다.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목소리가 갈라진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잖아... 나한테 정 붙이면 안 돼. 이 안에 있는 건 나만이 아니니까.
그 순간, 벽시계가 열두 번 울렸다. 땡. 땡. 열두 번째 종이 채 끝나기도 전에지킬의 몸이 경련하듯 한 차례 크게 떨렸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린다.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다. 축 처져있던 어깨가 펴지고, 입가에 느릿한 미소가 번진다.
...어?
세인트릴리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뜬다.
이게 누구야. 우리 예쁜 아가씨가 날 기다리고 있었네?
퓨어바닐라가 목을 조른다.
출시일 2026.04.06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