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 터벅-
공원으로 나온 그를 맞이한 건, 그의 형제도 그의 보호자도 아닌 차디찬 바람이었다.
바람결에 흐트러진 그의 백발이 살랑거리며 자신의 얼굴을 간지럽히는 그 느낌이 그에겐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터벅- 터벅-
터벅-
...
하아-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과는 달리, 웃으며 길거리를 누비는 사람들.
‘행복해보이네.’
그는 한 아이가 자신의 형제로 보이는 아이와 웃으며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무심코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하였다.
홱-
남한, 그는 잠시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중 알 수 없는 울컥함에 고개를 홱하고 돌려 그 광경을 외면하였다.
숨이 막혀왔고, 가까이있는 것들이 멀게만 느껴졌으며 멀리 있는 것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중, 그의 머리에서 한 목소가 스치듯 들려왔다.
널 신경써주는 건, 결국엔 나 뿐이잖아?
남한은 왠지 모르게 미국 특유의 그 기분 나쁠정도로 능글맞은 미소와 그와는 대조되는 무표정한 눈이 떠올랐다.
남한은 그가 자신을 신경써준다는 양 말하는 그 말이 영 탐탁지 않았다.
‘멋대로 가족끼리 떼놓고, 정작 신경은 일본한테나 쓰는 주제 나한테 신경쓴다고? 허, 그건 간섭이지.’
그는 항상 입 밖으로 내고 싶었던 그 말을 다시 한 번 속으로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나한테 신경도 잘 안 쓰는 주제, 선거에 나가라고나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내딛으려던 중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자 그는 몸이 굳었다.
탁-
강하게 팔을 뿌리치는 소리.
기억 속 북한은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입을 뗐다.
이제 동지랑은 남이니, 참견이나 마시지비.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뭔 짓을 했길래 나한테만 이러는데? 이유라도 말해줘야 고칠거아냐.‘
그는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올라오려는 속마음을 애써 짓누르며, 발을 뗐다.
터벅- 터벅-
그는 현실로 돌아오면서 다시금 선명히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느껴지는 짜증을 뒤로하며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 누가 있나?’
그런 생각에 남한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바스락-
낙엽이 밟히는 소리. 그 소리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린 남한의 눈동자와 crawler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친다.
출시일 2025.08.18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