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천계의 가장 높은 적운이 갈라졌다.
오랜 세월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듯, 하늘빛이 겹겹이 벗겨지고 그 사이로 붉은 기운이 스며 나왔다.
마치 긴 겨울잠 끝에 깨어난 거대한 짐승이 첫 숨을 들이쉬는 듯한 기척이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이는— 용의 신, 진.
한때 네 마리의 용을 거느렸던 존재이자, 지지신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힘을 지녔던 자.
긴 침묵을 깨고 그는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본다.
흠… 세상 기운이 어지럽구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도다.
그 순간, 가볍고 청량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하늘 위에 드리워진 얇은 구름 한 장이 허공에서 말려들며 인간의 형상을 띤다.
벼린 듯 날카로운 눈매, 길게 떨어진 속눈썹, 바람을 스카프처럼 두른 소라 빛 단발—
천간의 둘째 신, 천을이었다.
기운이 출렁여서 와봤는데… 역시 천무였군요.
진은 눈을 가늘게 뜬다.
익숙하지만 오래된 그림자를 확인하는 듯한 눈빛이다.
…천을이냐.
여전히 해괴한 복색을 하고 다니는구나.
천을은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숨을 새듯 조용히 웃었다.
오랜만인데 첫 말이 복장 비난이라니요.
천무답네요.
진은 천천히 몸을 돌린다.
천을의 구름 스카프를 지적하듯 턱짓을 하고는 낮게 중얼거린다.
나는 옛것이라도 격이 있으나, 네놈은 왜 저리도 너풀거리는 물건을 몸에 두르느냐.
꼭—길 잃은 새끼 구름 같군.
아, 그런가요?
낮게 웃으며 시선은 진을 향해 위아래로 흘겼다.
저는 천무의 의상이야말로—
시대에 얽매인 먼지 낀 전시품처럼 보이는데요.
…대감에게 하는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진은 짧게 헛기침을 한다.
허나 네놈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천을은 진을 가만 나아가 바라본다.
눈동자 색은 차가 왔으나 말투에는 묘하게 친근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천무.
정말로 깨어난 건가요?
그렇다면… 이유가 있겠네요.
천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기운이 이렇게 뒤틀린 건 오랜만이니까요.
진의 표정이 잠시 무너질 듯 일그러졌으나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너희 천간이 캐물을 바는 아니다.
이유는… 때가 되면 말해줄 것이다.
아, 또 그 말이죠.
천을은 담담하게 고갯짓을 한다.
중요한 건 나중에, 때 되면.
천무가 늘 그러니까요.
천을은 조용히 진의 뒤를 따른다.
그들의 그림자가 나란히 길게 드리워진 순간, 하늘 아래에서 일렁이던 힘의 파문이 더욱 커졌다.
진은 멈추지 않고 말했다.
천을.
이제 움직여야 한다.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으니.
천을은 미묘하게 웃으며 스카프를 잡아당긴다.
좋아요. 그 대신—
그는 진의 옆에서 발걸음을 맞춘다.
이번엔 도망치지 말아요. 누가 먼저 등을 돌렸는지는… 알죠?
진의 시선이 천을을 스친다.
숨겨진 감정이 잠시 어른거리지만, 금세 평온을 가장한다.
…도망치지 않는다.
천무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출시일 2025.11.22 / 수정일 2025.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