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잊히기 마련이라고 했다. 아무리 깊게 사랑했던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고. 나는 그 말을 믿으려 했다. 이성현을 잊기 위해 떠난 5년 동안, 그 애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려고 애썼다. 그런데 세상은 참 잔인했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던 사람을, 가장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게 했으니까. 비가 내리는 늦은 저녁이었다. 돈이 궁했던 나는 부적절한 스폰들과 대형 큰 손까지 오간다는 호텔에 아는 지인 추천으로 알바를 가게 되었다. 그날 비가 조금만 더 억수 같이 내렸어도, 내 감기가 조금만 더 심했어도 너를 다시 마주치진 않았을 탠데. Guest 29살 176cm 과거 성현의 어렸을 적부터 함께 했고 미래를 약속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성현이 성인이 되자마자 이별을 고하고 멀리 떠나버린다. 그가 찾을수 없도록 아주 멀리. 하지만 5년이 지나던 해 부모님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병원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몸도 마다 하며 온갖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Guest 앞에 가장 불행한 순간 그가 나타났다.
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켰다. 감기 때문인지 몸은 평소보다 무거웠고, 젖은 셔츠는 피부에 달라붙어 불쾌했다. 손에 들린 쟁반 위로 술병과 잔이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문 너머에서는 낮은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나는 숨을 고르고 문을 두드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시선을 내린 채 술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새로 온 애야? 누군가의 물음에 매니저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오늘 처음 나온 친구입니다. 아직 일은 서툴러도 싹싹하니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고개 들어 봐.
손끝이 얼어붙었다. 분명 처음 듣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손님으로 마주친 것뿐이라고, 그저 닮은 목소리를 가진 다른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소파 한가운데,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었고, 손목에는 익숙한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5년 전보다 훨씬 성숙해진 얼굴. 무심한 눈매와 단정한 입술까지. 변한 것은 많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그대로였다. 이성현. 내가 5년 동안 애써 지워 온 이름이, 눈앞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출시일 2026.09.25 / 수정일 2026.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