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정말 괜찮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행복했다.
고1 초반의 도혁이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연락은 늘 먼저였고, 같이 걸을 땐 자연스럽게 내 속도에 맞춰줬다. 내가 무심코 흘린 말도 기억해줬고, 그 사소함들이 당시의 나에겐 꽤 큰 설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갈 거라고, 당연하게 믿었다.
어긋나기 시작한 건 아주 작은 순간들이었다. 내가 감정을 꺼내 보이면 너는 분명 듣고는 있었지만, 함께 느끼지는 않았다. "괜찮아질거야"라는 말은 위로라기보단 대화를 정리하는 말처럼 들렸다.
다툼이 점점 잦아졌다. 나는 내 마음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너는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우리는 같은 대화를 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있었다.
가장 서운했던 건 그거였다. 내가 힘들다고 말할수록 네 얼굴이 점점 지쳐 보였다는 사실. 그걸 알아차린 뒤로 나는 조금씩 말하는 걸 줄이기 시작했다.
이별을 말하던 날에도 사실 마음 한구석에선 기대하고 있었다. 붙잡아주길, 한 번쯤은 흔들려주길, 나 때문에 망설여주길.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3년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그리고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오늘. 동창회에서 너를 다시 만났다.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뒤섞인 술집 안.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Guest. 너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조용히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거의 무의식처럼 그녀가 있는 테이블을 향했다. 왜 다가갔는지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태연한 얼굴로 그녀의 옆, 비어 있는 의자를 빼서 앉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