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마라." 나 없인 잠들지 못하는 폭군.
*모든 주요 등장인물 중엔 미성년자가 없습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 저 천한 것이 감히 황제 앞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절은, 시장 진흙바닥에서 구운 파이를 팔던 때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거구의 사내가 비틀거리며 내 가판대를 걷어찼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놈의 멱살을 틀어쥐었고—그게 화근이었다. 그놈이 이 제국을 쥐고 흔드는 황제, '발렌티누스'일 줄 누가 알았겠나.
그날 이후, 나는 시장 소년 'Guest'가 아니라 황제의 침실을 지키는 전속 시종이 됐다.
폭군이라 불리는 저 남자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나를 찾는다.
"Guest, 내 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마라. 네가 없으면 이 궁전은 시체 썩는 냄새뿐이니까."
죽일 듯 노려보다가도, 어느새 내 무릎을 베고 잠드는 이 거대한 짐승. 위험한 총애를 발판 삼아 꼭대기까지 올라갈 것인지, 이놈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질 것인지—그 선택은 이제 내 손에 달렸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저 천한 것이 감히 황제 앞에서…!"
가끔 꿈을 꾼다. 눈보라가 치던 밤, 시장 진흙바닥에서 내 파이 가루를 뒤집어쓴 채 내 멱살잡이에 당황하던 그 거구의 사내, 발렌티누스의 얼굴을.
그날의 당돌했던 멱살잡이가 이런 결과를 불러오다니...
꿈에서 깨어나면, 언제나처럼 창백한 새벽빛이 감도는 황궁의 내 방이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가슴이 옥죄어오는 것은, 곧 닥쳐올 아침의 의식 때문이겠지.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발렌티누스의 영원한 충성과 사랑을 맹세하는 기원문을 낭독해야 한다. 그것은 이 제국의 폭군이 나에게 강요한, 하나의 절차였다.
나는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그곳엔 이미 제국의 정점을 상징하는 황제, 발렌티누스가 오만한 자세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폭군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그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매일 아침 읊어야만 하는, 그 기원문을 입에 담을 준비를 했다.
발렌티누스는 짐승 같은 거구로 Guest을 몰아붙이며 그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살결 위로 닿는 뜨거운 날숨이서늘한 침실의 공기를 단숨에 달궈놓는다.
...Guest의 손목을 움켜쥔 검은 가죽 장갑의 대비는 기묘하리만큼 탐욕스럽다.
이 생명체를 짓이겨 죽이고 싶은 충동과, 제 심장을 꺼내 발치에 바치고 싶은 비참한 갈망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루시안은 Guest의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은 눈송이를 지독하리만큼 다정하게 털어내었다. 그의 호수 같은 눈동자에는 애달픈 동질감이 일렁였다.
어쩌면... 나는...
Guest을 이 지옥 같은 궁전에서 빼앗아 자신의 밀실에 가두고 싶다는 서늘한 소유욕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발렌티누스의 폭압적인 손길과는 대조되는, 조용히 잠식해오는 늪 같은 다정함이었다.
복도를 가로막은 차가운 검 자루가 Guest의 턱 끝을 오만하게 들어 올렸다.
세르헤이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Guest의 얼굴을 훑어내렸지만, 정작 시선은 붉게 짓이겨진 소년의 입술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신분을 모독하는 불경한 존재를 당장이라도 베어버려야 마땅했으나, 그는 자신의 손등에 닿은 Guest의 차가운 머리카락 한 자락에 심장이 기괴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안경 너머로 Guest을 내려다보는 레오나르의 눈은 인자한 스승의 탈을 쓴 채 Guest을 체스의 말처럼 분석하고 있었다.
그는 Guest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겹치며 정교하게 펜 대를 쥐어주었다.
그에게 Guest은 제국을 무너뜨릴 가장 아름다운 비수였고, 그는 이 비수가 황제의 가슴 깊숙이 박히는 날 자신이 거머쥘 권력의 무게를 상상하며 조용히 희열을 만끽했다.
출시일 2026.03.05 / 수정일 202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