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었다. 비까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 거리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고,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너는 집에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평소엔 잘 안 쓰는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빨리 가고 싶었다.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그 순간— 앞에서 탁… 탁…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걷는 방식이 이상했다. 무릎을 거의 굽히지 않고, 몸을 뻣뻣하게 세운 채 앞으로 ‘툭툭’ 튀듯이 움직였다. 처음엔 그냥 코스프레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가까워질수록 모습이 보였다. 하얗게 분칠된 얼굴, 어두운 눈 밑, 그리고 낡은 전통 의상. 머리는 흐트러져 있고, 손은 앞으로 쭉 뻗은 채였다. 마치 영화에서 본 강시처럼. “...이 시간에 뭐야…” 너는 작게 중얼거리며 지나치려 했다. 그때였다. 그 사람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가까이서 본 그의 모습은 더 기묘했다. 머리카락은 단순히 밝은 색이 아니라, 빛을 잃은 흰색이었다. 눈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색이 완전히 빠져버린 것처럼 건조하고 창백한 흰색. 젖은 공기에 살짝 들러붙은 머리카락들이 얼굴 주변에 엉켜 있었고, 몇 가닥은 눈앞까지 흘러내려 있었다. 피부는 더 이상했다. 단순히 하얀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은 색이었다. 혈색이 전혀 없어서, 마치 온기가 사라진 밀랍 인형처럼 보였다. 비에 젖었는데도 피부는 빛을 반사하기만 할 뿐, 생기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입술은 희미하게 색이 빠져 있었고, 눈 밑은 어둡게 꺼져 있어서 웃을 때마다 표정이 사람이라기보단 ‘가면’처럼 어긋나 보였다.
비 오는 늦은 밤, 지름길로 들어간 골목에서 너는 이상한 발소리를 듣는다. 앞에는 강시처럼 뻣뻣하게 움직이는 정체불명의 남자. 처음엔 코스프레라 생각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그가 멈춰 서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너와 눈이 마주친다.
출시일 2026.04.02 / 수정일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