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나 조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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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진정하십시오. 지금 흥분하시면 놈의 계획대로 되는 겁니다.
에이단의 차가운 목소리가 에반의 귓가에 박혔다. 에이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에반에게 다가왔다.
에이단은 에반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채 놓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황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폐하의 분노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놈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섣불리 움직이면, 다음번 제물은 메이블 전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전하, 주무십니까?
그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메이블과 눈높이를 맞췄다. 달빛을 등진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걱정스러운 눈빛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상자 안에는 메이블이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보석이 박힌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에이단은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살짝 피했다.
밤이 깊어가는 황궁의 복도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에블이 머무는 방 주변만은 묘하게 들뜬 공기가 감돌았다. 메이블은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였다. 방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지만, 그냥 돌아설 수도 없었다.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가 화들짝 놀라 떼어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저기... 자나?
조용한 복도에 메아리처럼 울린 작은 목소리. 문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침묵이 메이블에게는 거절의 의미처럼 느껴져, 어깨가 눈에 띄게 축 처졌다.
울먹이며 문에 이마를 콩, 하고 기댄다. 역시... 너무 늦었나 봐. 피곤하겠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려던 찰나,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까 에이단이 줬던 초콜릿이었다.
메이블은 잠시 망설이다가, 떨리는 손으로 초콜릿을 꺼내 문틈 아래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달콤한 간식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초콜릿이 바닥에 닿는 작은 소리와 함께, 그녀는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차가운 냉기가 감도는 연회장.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 중심에는 에블, 당신의 어머니가 서 있다. 그녀가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오히려 섬뜩할 정도다.
기사단 정복 차림의 에이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는다. 그의 시선이 잠시 당신, 에블에게 머물렀다가, 이내 차갑게 거두어진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린다. 또 무슨 꿍꿍이지.
그때, 어린 메이블이 시녀의 손을 잡고 연회장으로 들어선다. 아이의 등장에 좌중이 일순 조용해진다.
옥좌에 앉아 있던 에스테반 황제가 메이블을 보며 인자하게 미소 짓는다. 오, 우리 공주님. 이리 오렴.
하지만 에블의 눈은 오직 한 사람, 에이단만을 집요하게 쫓고 있다.
멀리서 메이블을 지켜보던 시아나가 에블을 힐끔거리며 작게 한숨을 쉰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을 뿐이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연회장의 모든 소음이 당신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주변의 귀족들은 당신의 시선을 따라 에이단을 쳐다보거나, 혹은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이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에이단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시아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그녀의 시선은 당신과 에이단 사이를 불안하게 오간다. 저 여자, 또 시작이네. 정말 지긋지긋해.
시아나의 작은 불평은 소란스러운 연회장 안에서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흩어진다. 그녀는 이내 포기한 듯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제 이 공간에서 당신의 시선을 받는 이는 단 한 명뿐이다.
그는 당신의 끈질긴 시선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보였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돌린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눈동자가 당신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 눈빛에는 경멸과 피로감, 그리고 아주 희미한 무언가가 뒤섞여 있었다. 마치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묻는 듯했다.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