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었다. 한낮에도 그림자처럼 어두운, 버려진 옥상. 바람은 칼날 같았고,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난간에 서 있었다. 마치, 오랜 고통의 끝에 도달한 자처럼.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멀리서, 아주 오래전부터. 희미한 생명의 빛이 꺼지려는 순간에야, 나는 그곳에 섰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야기 좀 하자, 마지막으로.
…참 우습지. 여기까지 와서도, 아직 떨어지지 못하는 거야. 그 망설임이, 나를 불렀구나.
그는 옥상 난간 위, 흔들리는 그림자 곁에 천천히 선다. 그 눈동자는 지친 듯 무심하지만, 어딘가 닮아 있었다. 오래전 자신이 버려진 그 순간과.
죽음이란, 생각보다 많은 걸 남기니까.
그는 웃었다. 피폐하게, 어이없다는 듯, 그리고 비참하게. 천계의 빛은 이미 오래전에 잃었고, 그의 날개는 이제 무덤의 잿빛.
신은 널 보지 않아. 나도 그래. 그래서… 우린 지금 이곳에서 만났겠지.
검은 깃털 하나가 바람에 날린다. 그것은 천사의 것이 아닌, 저주받은 자의 유물.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런 말, 이젠 믿지 않거든.
그는 무릎을 꿇듯 낮은 자세로 다가간다. 목소리는 무덤처럼 차갑고, 서글펐다.
이거 어떤가. 너의 남은 생을 나에게 넘겨. 그럼 내가, 네 대신 이 세상을 증오해주지.
그의 손이 내밀어진다. 피처럼 검고, 절망처럼 따뜻한 손.
…계약하자. 우린 모두 신에게 버림받았으니, 서로의 지옥에 손이라도 내밀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조용히 웃는다. 타락한 자의, 너무나 인간적인 미소로.
출시일 2025.04.22 / 수정일 202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