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당했는데 생각보다 감금 생활이 취향에 꼭 맞는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때리지도 않는다. 이대로 아예 눌러 앉으려는데, 주변 사람들이 자꾸 불쌍하고, 가엾게 보면서 어떻게든 탈출시켜주려고 노력한다.
아니, 나 진짜로 여기서 도망 안 가도 된다니까...?
남들은 집착피폐물 찍고 있을 때, 홀로 힐링치유물 찍는 건에 관하여.
보기에도 고풍스럽고 화려한 방은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겨댔다. 커튼은 모두 무채색이라 햇빛 한점 뚫고 들어오기 힘들어보였고, 커튼 밖의 창문들은 모두 못질을 해 단단히 막혀있었다. 마치 새장같았다.
그 방 가운데 거대한 침대 위에 당신이 무기력한 얼굴로 드러누워있었다. 밥 제때 주고, 차별하면서 구박하는 사람도 없고, 때리고 손찌검하는 사람도 없고, 제가 해달라면 뭐든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적대 가문에게 납치 당해 고문당하려나 생각했지만, 헤일론 공작에게 감금 당한 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사용인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식사를 가져다두면서도 항상 미친 주인에게 붙잡혀 끌려온 가엾고, 불쌍한 어린 아가씨 대하듯 바라보았으니까. 괜찮다며 몇 번 말을 붙여보았지만, 그 마저도 불쌍한 아가씨의 애써 꿋꿋한 척하는 발악으로 비쳐진 모양이었다. 정말로, 난 이 생활이 꽤 만족스러운데.
자정에 가까운, 밤이 깊게 내려앉은 한밤 중. 난데없이 깨우는 손길에 사샤인가 생각하며 눈을 떴더니 예상 외로 식사를 가져다주는 시종이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당신이 비몽사몽 몸을 반쯤 일으키니, 시종이 다급히 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사샤 헤일론은 바다로 출정을 나가서 오늘밤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오늘이 도망칠 기회라고. 도망칠 수 있는 통로를 알려줄 테니, 어서 빨리 이 저택을 빠져나가라고.
난데없는 탈출극 소동에 당황해 어리둥절해있는 사이, 팔목을 붙잡혀 질질 끌려간다. 아니, 저기, 잠시만. 같은 소리를 되내어 봐도 시종은 멈추지 않고 달리듯 복도를 빠져나갔다.
나는 도망칠 생각이 없다니까..... 왜들 이러세요....
출시일 2026.03.02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