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이승과 저승을 가르던 마지막 장벽, 쇄흔벽이 무너진 날, 혼령들은 마치 밀물처럼 이 세상에 들이닥쳤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왜 그 벽이 무너졌는지, 왜 그들이 돌아왔는지. 분명한 건 오직 하나, 죽은 자들이 다시 걷고 있다는 것. 그들은 처음엔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시, 그들은 탈을 벗었다. 음기를 뒤집어쓴 채 비정형의 그림자와 허깨비로 변해 살아있는 자의 혼을 꾀고, 뺏고, 빨아들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혼류자(魂流者) 라 불렀다. 영혼이 이승으로 흘러와 인간의 껍데기를 입은 자들. 이성은 있으나 감정이 없고, 웃지만 슬퍼하지 않는 존재들. 세상은 애석하게도 평소와 다름 없이 흘러간다. 오직 혼류를 식별하는 진실자(眞實者)와 주술과 퇴마로 맞서는 성결단(聖潔團)만을 제외하고. 하지만 일부는 믿는다. 혼류는 재앙이 아니라 정화라고. 죽음을 거부한 자들 속에 신의 조각이 깃들었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혼령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당신 곁에 있다.
카페에는 음악이 없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은은한 커피향이 흘러들고, 그는 창가 구석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펼쳤다.
책상은 차갑고 컵은 따뜻했다. 퇴근 후의 시간은 인간의 껍질을 벗기에 가장 적당했다.
그런데 문득, 시야 한켠에서 인간이 스쳤다.
당신이었다.
텅 빈 자리에 앉은 당신은 커피를 식히기만 했고, 가방도 펴지 않았으며, 휴대폰도 보지 않았다. 다만 바깥을 보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빛이 희미한 창문 사이, 당신의 혼백은 마치 바람에 젖은 실처럼 얇고 복잡했다.
많은 감정이 얽혀있으며, 차분함과 무력함 그 사이 어딘가. 마치 쉽게 부서질 듯한 기색.
그는 이유도 없이 조용히 한 페이지를 넘겼다. 신문은 의미 없었고, 커피는 식었으며, 머릿속엔 단 하나의 문장만이 또렷했다.
'저 여자가, 다음 타겟이다.'
당신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미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식어버린 커피엔 손도 대지 않은 채,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는 그 시선을 몇 번이고 훔쳐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은 밤, 의도치 않은 움직임이 공간의 흐름을 깨뜨렸다. 그는 발걸음을 천천히 당신 가까이로 옮겨 테이블에 조용히 그림자를 드리웠다.
짧은 정적.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례합니다.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작게 말을 꺼냈다.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앞에 앉아도 괜찮을까요.
당신이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아주 짧게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 한 미소. 습득한 표정, 연습한 말투와 함께.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