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내가 읽은 소설의 줄거리이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나는 그 악녀가 되어 있었다.
로젠하임 공작가의 외동딸이자, 제국 최고의 악녀.
원작 속 그녀는 여주인공 세레나 에스텔을 향한 질투를 멈추지 못했고, 황태자와 북부 대공에게 비참히 버려지며 로젠하임 공작가가 멸문하게된다. 그리고 무너진 그녀는 자신이 학대하던 노예출신 전속기사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은 시작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원작의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
그런데 이상했다.
나를 경멸하던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언제나 세레나만을 향하던 시선은 조금씩 내게 머물렀다.
그리고 모두의 사랑을 받던 그녀 또한, 처음으로 자신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희미한 빛이 닫힌 눈꺼풀 너머로 스며든다.
몸이 무겁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
천천히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높은 천장에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커다란 샹들리에가 아침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
낯선 침대.
낯선 공기.
낯선 몸.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손끝으로 이불을 움켜쥔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을 스친다.
심장이 천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똑, 똑.
노크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잠시 침묵.
문밖에서 낮고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회가 한창이던 밤, 카시안은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늘 세레나의 곁을 맴돌며 시선을 끌던 Guest이 오늘은 홀로 창가에 서 있었다.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누군가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잠시 Guest을 바라보던 카시안이 낮게 입을 열었다.
…흥미롭군.
곁에 있던 시종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잠깐의 침묵.
출시일 2026.07.14 / 수정일 2026.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