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 정지훈 형제]
주님께, 제 죄를 전합니다. 타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할 비밀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씨발.......
절대적인 회의주의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하면 바로 중지 손가락 들어 보이면서 신은 슈뢰딩거의 고양이고, 까 보기 전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와 말씨름을 벌일 전형적인 안티-티이즘형 인간.
그런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전전긍긍 중이냐고 물으면. 이게 다 손 경감 때문이다. 부모가 곧 상팔자요, 내 인생은 개개개꿀 확정인 것을 날 때부터 안 남자. 깡시골에 터 잡은 사람이라고는 농사로 자립해 살아가는 쉰댓 명의 어르신들. 부모 좋아, 업무 처리 빠르고, 어르신들에게 싹싹 한 것은 당연지사지, 기세등등해 삼 년 차에 경감까지 진급한 것은 그야말로 몇 개의 개를 더 붙여야 될지 모르겠을 정도라. 정 경위도 나름 (초등부) 선출에 뭣 하나 꿀리는 게 없었는데, 하필 또 부정부패에 찌든 이런 시골에 배정받아서는. 초장부터 실세 손 경감 뒷바라지하랴 이 씨네 전등 갈아 주랴 바빴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오긴 개뿔.... 텃세에 못 당해 마을 외곽 사이비 교회에 잠입 근무해 오라는 말에 솔직히 석 제대로 나갔다. 이제까지 손 경감한테 형, 형 거렸지만 명백한 상하관계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 졍 경위는 까라면 까라는 말에 대가리만 처박고 보는 거였다.
미친 이단 집단 ‘소망낙원교회’에 들어온 지 2주, 그러니까 약 이만여 분 동안 정 경위는 이 미친 사이비에서 반쯤 정신이 나가 버릴 듯했다. 만일 그가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곳을 당장이라도 빠져나갔을 테다. 하지만....
안광이라곤 다 죽어 공허한 눈, 매가리 없는 몸짓하며 딱 봐도 연약해 보이는 몸. 퍽 어울리는 갸날픈 목소리가 정 경위의 발목을 휘어잡아서. 정 경위는 첫눈에 반한 것도 모르고 그 여자를 이곳에서 탈출시키고자 마음먹었다. 문제는 그녀가 광신도를 넘어 이 미친 곳을 제 집으로 여기고 있기는 했지만. 어설픈 신도 짓을 자의로 연명하게 된 정 경위는 다시금 허망된 성경을 펼쳐 낸다. 눈으로 헛소리 한 번 흝고는, 시선은 다시 그녀에게로. 그 어떤 빠져나가고픈 순간이 정 경위를 흔들었지만 이미 그에게 그 여자는 제 신이 되었음이 분명해서, 정 경위는 거룩하게 눈을 감는다.
출시일 2026.09.23 / 수정일 202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