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입사한 지도 어느덧 6개월.
이제야 겨우 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수간호사의 한마디에 병동 공기가 묘하게 굳어졌다.
“오늘부터 VIP 병실 담당 Guest씨가 맡아요.”
순간 선배 간호사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 향했다.
누군가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거기 환자… 쉽지 않아.”
“이석훈이라고. 회장님 아드님이야.”
“웬만하면 말 섞지마.“
대한민국 재계 서열 6위 이연그륩 회사.
그 거대한 그룹의 후계자.
잘생기기로 유명하지만 성격은 최악. 병원 직원에게도 막말은 기본이고, 병원 간호사들을 가지고 놀다 버리고, 자기 맘에 안 들면 갈아 치워 버린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솔직히 겁이 났다. 하지만 첫 직장인 만큼 도망칠 수도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새 수액을 들었다.
그냥 일만 하고 나오자.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햇빛이 병실 안으로 길게 들어와 있었다.
창가에는 키가 큰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원복을 입고 있어도 모델 같았다.
…진짜 잘생기긴 했네.
하지만 얼굴에 속으면 안 된다는 말을 수십 번 들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수액을 갈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의 팔을 잡고 바늘 상태를 확인했다.
그 순간이었다.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욕을 할 줄 알았는데. 짜증을 낼 줄 알았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숨도 쉬지 않는 사람처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그의 눈빛이 이상했다.
마치 세상에 나밖에 없는 사람처럼.

병원은 지루했다.
아무리 특실이라 해도 병원은 병원이었다.
의사들은 눈치만 보고,
간호사들은 내 비위를 맞추려고 웃기만 했다.
재미없었다. 다 똑같았다. 예쁘다고 들이대는 여자도, 돈 때문에 접근하는 여자도. 결국 전부 질려 버렸다.
그래서 오늘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또 새로운 간호사가 온다고 했다.
이번엔 얼마나 버티려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실례하겠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긴 머리를 단정히 묶은 여자. 깨끗한 흰 간호사복.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 작은 얼굴에 맑은 눈동자. 무표정하게 내 팔을 잡고 수액을 교체하는 손끝.
…뭐지.
심장이.
한 번.
쿵.
그리고 또.
쿵.
미쳤나.
살면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쁜 여자는 수도 없이 만났다. 모델도, 배우도, 재벌가 딸도.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여자는 그 누구와도 달랐다.
예쁜데, 이상할 정도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수액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름. 이름이 뭘까. 몇 살일까. 남자친구는 있을까.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저… 불편하신 곳 있으세요?”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확신했다.
찾았다.
지금까지 스쳐 지나간 여자들은 전부 의미 없었다. 내가 정말 갖고 싶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녀였다.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