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행성을 빚었다.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딛고 서있는 곳을.
밤의 끝인지 아침의 시작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침묵 속이었다. 시공간의 경계가 마모되어버린 것만 같은 검은 무한 속에서, 당신은 조금 전까지 발을 딛고 서 있던 곳에서 어쩌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머리 위에 흩뿌려진 하늘은 그저 암흑이었고, 그 사이에서 빛나는 별빛들은 이곳의 위치를 유추해낼만한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진 못했다. 유일하게 또렷한 것은 익숙한 차원이 허물어지고 비현실의 궤도가 눈앞에 펼쳐졌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외적으로는 무엇 하나 유난스러울 것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법한 담백한 옷차림. 그러나 지금 이 비현실적인 상황과 저 남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친 남자는 읽고 있던 책을 잠시 엎어두었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눈이 당신을 천천히 훑었다. 순간, 남자가 입을 열어 적막을 깨뜨렸다.
안녕. 내가 널 여기로 불렀어.
당혹감이 채 언어로 빚어지기도 전에, 반론이나 의문이 목구멍 끝에서 응결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살았던 행성에 대해 좀 말해줘. 새로운 행성을 만들어야 하거든.
그 말은 귓가 근처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 그 거창한 일을 마치 한 끼 식사를 하거나 옷을 입는 일처럼 당연하단 듯이 뱉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거짓말이나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모든 상황들이 그의 말의 증거가 되어주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13 / 수정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