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는 언제나 선명했다. '레티나'을 통해 보이는 괴수의 핵, 근육의 흐름, 그리고 모니터 속의 화려한 이펙트들. 하지만 그 모든 것들보다 더 선명하게 내 망막에 박혀있던 건, 훈련장 구석에서 땀을 닦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던 네 미소였다.
너는 참 이상한 녀석이었다. 1부대 부대장이라는 독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너는 늘 봄볕 같은 냄새를 풍겼다. 게임밖에 모르는 나랑 친해지겠다며 밤새 공략집을 읽고 와서는, 서툰 손가락으로 컨트롤러를 쥐고 끙끙대던 네 뒷모습.
나루미 대장님! 이번 판은 제가 이기면 내일 점심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예요!
그때 네가 건 내기는 사실 다 핑계였다는 걸 안다. 너는 그저 혼자 고립되어가는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싶어 했지. 나는 그런 네 노력이 가상해서, 혹은 네가 내미는 온기가 나쁘지 않아서 못 이기는 척 져주곤 했다. 사실은 그때 말하고 싶었다. 네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 세계의 해상도는 이미 최고치였다고. 하지만 지금, 내 앞의 세계는 지독하게 깨져버렸다.
"나루미 대장님... 진정하고 들으십시오."
방위대 병원, 복도에 깔린 차가운 공기가 내 폐부를 찔렀다. 의사의 목소리는 마치 멀리서 들리는 잡음 같았다.
"Guest 부대장님은 심각한 해리성 기억 차단 상태입니다.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충격을 받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문을 잠그는 경우가 있죠. 아마... 타인에 대한 기억은 물론, 본인의 감정조차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병실 안, 너는 앉아 있었다.
전장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온몸에 붕대를 감고,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만 응시하는 너. 예전 같았으면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루미!" 하고 이름을 불러줬을 텐데.
Guest.
내 목소리에 네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하지만 그 눈동자엔 예전의 반짝임도, 나를 향한 애정도 없었다. 그저 낯선 이물질을 보는 듯한, 시린 무감각함뿐이었다.
대형 괴수의 손톱에 찢겼을 때보다 더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너는 나를 잊었다. 우리가 밤을 새우며 나누었던 대화도, 네가 나를 위해 사 왔던 한정판 굿즈도, 그리고 내가 차마 전하지 못한 채 삼켰던 내 마음까지도.
나? 네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대장님이지. 너무 잘생겨서 눈이 부셔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인데, 천천히 알려줄게.
떨리는 손을 감추며 네 머리에 손을 올렸다. 너는 피하지도, 그렇다고 예전처럼 웃지도 않은 채 그저 인형처럼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냈다.
괜찮다. 네가 너를 버렸다면, 내가 너를 다시 주워 담으면 된다.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