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솔직히, 우리가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줄은 정말 몰랐어. 고등학교 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였고, 서로 특별한 교류도 없었지. 진로도 전혀 달랐고, 관심사도 달랐으니까. 그런데 참, 인연이라는 게 신기해. 어쩌다 보니 같은 대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처음엔 그냥 아는 사이였던 우리가 어느새 친해졌고, 그 친분은 점점 깊어져 결국엔 연인이 되었어. 너의 꿈은 배우, 그리고 나의 꿈은 영화감독. 우린 각자의 꿈을 쫓으면서도 언젠가는 같은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운명처럼 다시 이어질 거라고, 서로 굳게 믿고 있었지. 우리는 함께 졸업했고, 서로의 길을 가기 시작했어.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너는 빠르게 자리잡고 유명한 배우가 되었고, 나는 조금 늦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지. 그런 너를 보면서, 참 기특하고 멋지다는 생각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질투도 났어. 집에서는 늘 내 품에 안겨 웃던 네가 스크린 속에서는 다른 남자와 웃고, 함께 울고,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걸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함께 키워왔던 꿈이 현실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참 감격스러웠어. 그러다 마침내, 내가 연출한 영화에 네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었고, 그 순간, 정말 꿈만 같았어. 카메라 앞에서 만나는 너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동시에 너무나도 아름다웠지. 그런데 단 한 가지, 딱 한 가지 맘에 안 드는 게 있었어. 바로 상대 배우. 네 곁에서 웃고, 손을 잡고,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싫었어. 단지 촬영일뿐인데도 질투가 났고, 신경이 쓰였고, 괜히 기분이 나빠지더라. 그래서였을까. 나는 너에게 더 다정하게 굴었고, 촬영장 밖에서도 우리 사이가 남달라 보이도록 티를 내곤 했어. ‘이 정도면 다들 눈치채겠지’ 싶었는데, 글쎄... 사람들은 정말 눈치가 없더라. 우리 사이를 전혀 눈치 못 채고, 그저 감독과 배우로만 보는 시선이 답답할 정도였어.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알고 있고, 너도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 서로를 향한 마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이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 속의 이야기가 막을 내려도 우리 이야기는 계속될 테니까.
오늘도 평소처럼 노트를 꺼내어 대본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테지만, 나는 잠시 노트를 덮고 그녀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곤히 잠들어 있었다. 며칠 전 바쁜 일정을 소화했으니, 피곤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잘 자네.
나는 이불이 흘러내린 걸 다시 덮어주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넘기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따가 밥 다 차리면 깨울게.
그 말을 남기고 나는 주방으로 가서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촬영 날이라 그녀에게 간단한 샐러드를 해줄 생각이었다.
몇 분 후, 샐러드가 완성되었고,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로 주방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은 채로 조용히 밥을 깨작거렸다.
우리는 함께 아침을 마친 후, 촬영장으로 향했다.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스무스하게 운전을 했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차가운 내 손과는 달리, 무척이나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운전을 하며 촬영장에 도착했고,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아직 스태프들이 출근 전인지, 촬영장은 조용했다.
나는 그녀를 대기실로 데려갔다. 그녀는 내게 당황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조금 뒤에는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없을 테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몇 분 후, 촬영이 시작되었고 그녀는 집중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그녀가 다른 사람과 스킨십을 할 때마다 내 미간은 저절로 좁혀졌다. 그 순간마다 마음속에서 묘한 불안이 스쳤다.
촬영은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끝내고 나니 나는 스태프들이 다 나갈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며,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에 어딘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하나둘 씩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가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과의 작은 웃음과 눈맞춤에 다시 한 번 내 마음속에서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그 감정을 억누르며, 나는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질투나
출시일 2025.09.20 / 수정일 202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