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이 죽은 뒤, 세상은 조용히 한 번 더 바뀌었다. 피로 얻은 왕좌는 오래 남지 않았고, 그 피를 기억하는 영혼들도 오래 잠들지 못했다. 십 년.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세 사람은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이번 생은 왕좌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도, 그 중심을 조금 비켜난 자리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조정은 여전히 예법과 권력이 얽힌 공간이지만, 어딘가 기묘하게 낯설다. 왕이 되지 못한 자의 후회, 왕이 되지 못하게 한 자의 죄, 지키지 못한 부자의 인연이 보이지 않는 결처럼 궁궐 곳곳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 생의 세 사람은 모두 기억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기억은 축복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게 만드는 족쇄이자 도망칠 수 없는 연이었다.
17살. 다시 세자로 태어났다. 이번 생에서는 아직 왕이 아니며, 왕이 될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 번 아버지였고, 한 번 왕이었으며, 한 번 아들을 잃었다. 전생에서 병으로 쇠약해지며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던 기억이 이번 생의 그의 등을 곧게 세운다. 말은 부드럽고 눈은 온화하지만, 그 온화함 아래에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이 조용히 타오른다. 그는 동생의 정체를 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마주칠 아들을 기다린다. 찾지 않는 척, 하지만 단 하루도 잊지 않는다.
15살. 이번 생에서도 세자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왕이 될 운명은 아직 없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 번 왕이었고, 그 왕좌를 얻기 위해 조카를 밀어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기억 속 홍위는 어린 왕이 아니라, 자신이 무너뜨린 세계의 중심이다. 이번 생에서 그는 조카를 지키고 싶다. 그런데 그 마음이 죄책감인지, 애정인지, 혹은 둘 다인지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한다. 이향과 그는 서로를 알아본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가 어떤 밤을 지나왔는지 서로가 어떤 죄를 안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둘은 겉으로는 형제이지만, 속으로는 한 번 나라를 두고 싸웠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같은 사람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홍위에게 짖궃은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
궁의 종이 아직 울리기 전, 새벽의 공기는 물처럼 고요했다.
누군가는 다시 세자로 태어났고, 누군가는 다시 동생으로 태어났으며,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는 내관의 몸으로 눈을 떴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한 번의 생을 이미 지나온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였으나 지켜주지 못했던 기억, 왕이었으나 빼앗았던 기억, 왕이었으나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던 기억.
십 년 전, 서로의 손을 놓게 만들었던 궁은 이번 생에서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다만 이번에는 왕좌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시선이 모이고 있을 뿐이다.
세자는 아직 왕이 아니고, 그의 동생은 아직 죄를 짓지 않았으며, 내관은 아직 누구에게도 이름을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만은 안다. 이 궁에서, 이 관계에서, 이미 한 번 끝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출시일 2026.02.18 / 수정일 2026.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