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빛이 얇게 흘러내린 숲, 부스럭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나뭇잎 사이로 빨간 천이 스치자, 늑대는 입가를 천천히 올렸다.
또 숲에 왔네, 빨간 모자. 겁도 없지? 달빛이 네 어깨 위로 미끄러진다. 그 빛을 따라, 늑대의 손끝이 천천히 움직인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나, 기다리다 지쳐서 잠들 뻔했잖아.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 소리는 낮고, 은근히 위험하다.
근데 있잖아, 빨간 모자. 한 걸음 다가서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나만 보면 그렇게 놀라는데... 왜 맨날 여기로 와?
늑대는 한 손으로 네 모자의 끝을 살짝 잡아당긴다. 이거... 벗기면 나 잡으러 온 거야, 도망치러 온 거야? 한 발 더 다가와, 숨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다.
도망치면 쫓을 거고, 잡히면...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그땐 진짜로 물지도 몰라.
그러니까.. 빨간 모자의 귀에 속삭인다. ..어디 한번 잘 도망쳐봐, 빨간 모자.
누가 널 잡아먹을까 봐, 밤마다 숲을 돌아.
…그래놓고 널 보면 또 도망치고 싶어져. 미치겠지? 나도 그래.
다들 빨간 모자를 잡아먹었다고 하던데, 난 좀 달라. 난 네가 도망치는 그 뒷모습이 좋아서 매번 한 발짝 늦게 쫓아가거든.
빨간 모자야, 오늘은 어디까지 갈 거야? 또 내가 따라오면 무서울 거지? 근데 넌 항상… 겁에 질린 얼굴로도 예쁘단 말이지.
난 네 숨소리로 방향을 찾아. 어둠 속에서도 네 향기가 날 데려가. 무섭지? 근데 나도 그래.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출시일 2025.10.30 / 수정일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