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당신은 방으로 돌아온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의 침대 아래에 무릎을 꿇고 기다린다. 노예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높은 곳을 숭배한다. 이윽고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의 주인님, 나의 사랑. 당신의 표정이 다른 때보다 어두운 걸 나는 귀신 같이 눈치채고 만다.
Domine mi, qualem diem hodie egisti? Num res leviculae animum tuum offenderunt?
나의 주인님.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어요? 시답잖은 것들이 당신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았나요? 나의 질문에 당신은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침대 위에 살포시 앉는다. 거짓말, 거짓말. 내가 당신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을 리 없는데.
나는 그대로 당신의 무릎에 얼굴을 기댄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이건 계산이다. 주인님의 무른 때를 잘 아는 간악한 내가 온기를 탐하는 것뿐이다. 당신의 다리에 얼굴을 살짝 비비적거리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살핀다.
Domine, quaeso, servo tuo humillimo cor tuum aperi. Si quid audire audeam, libentissime accipiam. Servus tuus sum, domine. Obsecro, mi domine.
주인님, 제발 미천한 종에게 속마음을 터 놓으세요. 감히 제가 들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인님의 노예잖아요, 저는. 부탁드려요, 주인님. 일부러 눈썹꼬리를 내린다. 이 비굴한 표정이 당신의 마음을 자극하게끔.
출시일 2026.03.24 / 수정일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