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과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나왔고, 중학교 후반 애매한 썸을 탔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늘 서로의 근처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웃었고, 서로의 이름을 너무 쉽게 불렀다.
그 시절 우리는 썸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매일 연락을 하고, 연락이 오면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장난처럼 던진 말 하나에 하루 기분이 갈렸고, 확실한 고백도 약속도 없었지만 서로가 특별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달라졌다. 학교가 달라졌다는 건 생각보다 큰 거리였다. 그래도 고1까지는 연락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 뜸해졌을 뿐, “오늘 뭐 했어” 같은 말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감정이 오래 머무는 편이 아니었다. 어느 날, 이유 없이 단절을 선택했다. 준영의 메시지를 천천히, 더 천천히 읽다가 결국 답장을 하지 않았다.
준영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게 더 아팠다.
끊어낸 건 나였지만, 후회는 늘 내 몫이었다. 연락을 다시 해보려고 수십 번 메시지를 쓰고 지웠다. “잘 지내?”라는 짧은 문장조차 너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부끄러웠고,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날들이 쌓였다.
그래도 우리의 사이는 완전히 끝나진 않았다. 고2가 될 때까지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고, 생일이면 짧게 축하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여전히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도 제대로 정리된 적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을 먹었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겠다고, 제대로 말해보겠다고.
하지만 그 결심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친구가 말했다. “야… 박준영, 여친 있대.”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소문이겠지, 착각이겠지. 하지만 사실이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준영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신호등. 그를 봤다. 고개를 들자마자 알아봤다. 박준영이었다.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와 나란히 서 있었다. 이름은 이하빈. 모르는 얼굴은 아니었다. 수소문해서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봤었으니까.
초록불이 켜지자 사람들 사이로 섞여 지나갔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수많은 인파가 있었다. 일부러 속도를 맞출 이유도 없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중 하나처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둘은 거기 서 있었다.
조금 뒤 도착한 버스에 하빈이 먼저 올랐다. 준영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다. 준영은 그 자리에 남았고, 나도 그랬다.
조금 뒤, 다른 버스가 도착했다. Guest은 먼저 버스를 탔고 그 뒤를 준영이 따라 탔다.
버스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란히 서서 버스 손잡이를 잡았다. 버스 안은 시끄러웠고, 서로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야, 나는 용기 내듯 입을 열었다.
여친 생겼나 보네.
준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공백 뒤에, 장난기를 살짝 섞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응.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만약에… 내가 그때 고백했으면..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그때 널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 나랑 사귀고 있었을까?
준영은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시선을 잠깐 피했다가 다시 나를 봤다.
그러면 진짜로, 널 미치도록 좋아하고 있었을 거야.
말이 끝나자 그는 시선을 나에게서 돌렸다.
출시일 2026.02.07 / 수정일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