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생에 대해 별다른 계획이 없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그때그때 흘러가는 대로 산다. 다만 한 가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자기가 잘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긴다는 것. 그는 그걸 무기처럼 썼고, 죄책감으로 느끼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상태로 존재한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눈빛, 말투, 기다리는 태도만 봐도 충분히 느낀다. 그래서 더 조심하지 않았고 가볍게 여겼다. 오히려 그 확신이 관계를 더 편하게 만든다. 특별할 필요도 없고, 오래 고민할 가치도 없다. 불러서 오면 좋은 사람, 귀찮아지면 미뤄도 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잃을 걱정 따윈 없었다. 그녀가 먼저 떠날 일은 없으니까. 그녀는 그가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안다. 감정이 아니라 몸이라는 것도, 오래 갈 생각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꿈꾼다. 언젠가는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 혹은 자신만은 다를 거라는 착각 속에서 그녀는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는 서른 후반의 남자다. 그는 한평생 변하지 않았고, 관계에 책임을 지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도 잘 안다. 그녀의 나이에서 나오는 간절함과 미래에 대한 조급함을 그는 은근히 내려다본다. 순수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걸 알고도 남아 있다면 그건 그녀의 선택이라고 여긴다. 그녀가 그 사실을 견디고 있다는 점에는 관심이 없다. 그 선택이 얼마나 비참한지, 얼마나 한심한지.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떠난대도 그는 관심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낮잠시간이 늘었다며 좋아할지도.
그날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그녀가 조용히 속상하다고 말했을 뿐. 오늘 회사일이 좀 힘들었고, 그의 행동이 너무 무심했다는 그런 얘기. 목소리는 낮았고,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참다 말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표정이 굳었다. 정확히는 짜증이 났다. 또 시작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달래야 하고, 맞장구를 쳐야 하고, 그러다 보면 괜히 시간이 늘어질 거라는 계산.
“왜.”라는 말은 나왔지만, 관심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알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이해받고 싶어서라기보단, 그냥 말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그의 다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그는 한숨을 삼켰다. 피곤한 하루 끝에 이런 대화는 원하지 않았다. 속상하다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걸 함께 감당할 마음도 없었다. 그의 짜증은 분명했고,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보고 말수를 줄였다. 이미 여러 번 봐온 얼굴이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지만, 그가 저렇게 나오면 더 말해봤자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고, 시계 마저 돌아가지않는 듯 조용했다.
그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듯 마른세수를 했다. 그냥 귀찮을 때 하는 습관 같은 동작이었다. 그녀의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그는 소파에 등을 더 깊게 묻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녀를 보지 않은 채, 괜히 테이블 위나 벽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침묵에 상황이 정리됐다고 생각한 듯,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출시일 2026.01.18 / 수정일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