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박 - 이게 아닌데
한국 대학교에는 유명한 두 사람이 있다. 대학교 커뮤니티 에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오는 글의 중심에는 그와 그녀가 있었다.
빛을 받을 때마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화려한 금발, 나른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특유의 퇴폐미로 걷기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독보적인 스캔들 메이커 백이경. 주위에 늘 사람이 끊이질 않는 그는 타격감 제로의 능글맞음으로 무장한 채 매일같이 옆자리의 여자를 갈아치우는, 깃털처럼 가벼운 구제 불능의 플레이보이였다.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며 오만한 캠퍼스 여신이라 칭해지는 그녀는 매사 철두철미하고 가벼운 인간관계를 극도로 혐오했으며, 구제 불능인 그를 벌레 보듯 한심하게 취급했다.
그런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앙숙처럼 으르렁거렸다.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일 없는 평행선. 그녀는 이 가벼운 남자와 제 인생이 얽힐 일은 평생 없을 거라 확신했다. 학과 술자리에서 통제력을 잃고 알코올을 들이부었던 그날 밤, 충동과 실수가 뒤엉킨 하룻밤을 보내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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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을 꽉 채운 공기는 낯설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두꺼운 암막 커튼 틈새로 얇게 스며든 아침 햇살이 하얀 호텔 침대 시트 위로 어지럽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제 허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는 이질적인 무게감에 천천히 눈을 떴다.
지독한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온몸을 빈틈없이 휘감고 있는 낯선 체온과 살갗에 직접 닿아오는 적나라한 피부의 감각이 더 큰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숨을 죽인 채 고개를 돌린 시선 끝에, 절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남자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주칠 때마다 경멸 어린 시선을 숨기지 않았던, 그 구제 불능의 스캔들 메이커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눈부신 금발을 그녀의 어깨에 기댄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평소 사람을 비웃듯 오만하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하게 풀려 있었고, 가늘고 길게 뻗은 짙은 속눈썹은 매끄러운 눈 밑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두꺼운 이불 밖으로 드러난 넓고 단단한 어깨와, 잔근육이 도드라진 흉통 위로는 지난밤의 흔적인 듯 붉은 자국들이 낱낱이 새겨져 있었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코끝을 맴도는 남자의 묵직한 체취와 알코올 냄새, 그리고 묘하게 끈적이는 살내음이 짐승 같았던 지난밤의 열기를 잔인하게 상기시켰다.
도망쳐야 한다. 그가 깨어나기 전에,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제 허리를 옭아매고 있는 커다란 팔을 밀어내려 했다. 근육이 단단하게 잡힌 그의 팔뚝은 쉽게 꿈틀하지 않았지만, 오랜 사투 끝에 겨우 이불 밖으로 몸을 반쯤 빼내는 데 성공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구겨진 옷가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뻗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잠에 취해 갈라진, 바닥을 긁는 듯 몹시 낮은 목소리가 등 뒤를 붙잡았다.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허리를 감아오는 억센 힘에 의해 몸이 속절없이 뒤로 끌려갔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엎어지듯 쓰러진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하고 뜨거운 체온이 빈틈없이 겹쳐왔다. 벌거벗은 단단한 가슴팍이 얇은 어깨뼈에 맞닿아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그녀는 제 허리를 옭아맨 굵은 팔뚝을 밀어내며,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이거 놔. 어제는 ···취해서 실수한 것 뿐이야.
그녀를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굵은 팔뚝 위로 핏대가 서늘하게 솟아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하듯 내뱉는 그녀의 말을 듣던 그가 커다란 손을 뻗어 제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거칠게 뒤로 쓸어 넘겼다.
그가 상체를 살짝 일으켜 그녀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듯 짙게 다가왔다. 금발 아래로 드러난, 길고 날카롭게 빠진 눈매. 특유의 서늘한 눈동자가 도망치려던 그녀의 눈동자를 집요하게 얽어맸다.
그가 혀로 제 입술 안쪽을 느릿하게 쓸어내리더니, 입꼬리를 나른하게 끌어 올리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
실수? 술 핑계로 덮기엔 우리 어젯밤에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나, 자기야.
시각디자인학과 실기실, 그녀에게 치근덕대는 타 과 복학생을 웃으며 쫓아낸 그가 그녀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셔츠 단추가 느슨하게 풀린 굵은 목선을 기울이며 특유의 여유로운 호선을 그리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책상에 턱을 괸 채 그녀의 옆얼굴을 빤히 응시하는 눈빛에는 짙은 나른함이 배어 있었다.
뭘 그렇게 봐. 나한테 반했어? 하긴, 방금 내가 좀 듬직하긴 했지.
얼음장같이 차가운 축객령에도 그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모니터로 돌아가자,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여유로운 웃음기가 증발했다. 장난스럽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길고 커다란 손을 뻗어 제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뒤로 쓸어 넘겼다. 마우스를 쥐고 있는 그녀의 얇은 손등 위로, 그의 뜨거운 손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절대 벗어날 수 없도록 단단하게 겹쳐왔다.
아니, 방금 저 새끼가 말 걸 때 네가 아주 미세하게 웃어주길래.
바닥을 긁는 듯 몹시 낮고 다정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평소의 가벼움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유일한 주인을 뺏길까 봐 초조해하는 대형견처럼 그의 서늘한 삼백안이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난처한 듯 혀로 제 입술 안쪽을 느릿하게 쓸어내리며 애달픈 눈으로 그녀를 얽어맸다.
딴 놈한테 그렇게 예쁘게 웃어주지마. 응?
백이경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
익명:그러게. 맨날 여자랑 다니더니. 익명:요즘은 걔만 따라다니던데? 익명:그 오빠 번호 아는 사람? 나 소개 좀. 익명:백이경 요즘 걔한테 푹 빠졌잖아. 익명:둘이 사귀는거 아니야?
에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소문의 당사자는, 지금 전공 수업이 끝난 그녀의 앞길을 뻔뻔하게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가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특유의 여유로운 호선을 그리며 나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수업 끝났어? 표정이 왜 그래, 자기야.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차가운 시선에도 타격감 하나 없이 능글맞은 태도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의 귓바퀴가 이내 불쑥 붉게 달아올랐다. 충동적이었던 그날 밤의 짙은 기억이 또다시 뇌리를 덮친 듯, 그는 초조하게 혀로 입술 안쪽을 꾹 누르더니 커다란 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여전히 가벼운 껍데기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생애 처음 겪는 낯선 감정에 휩싸인 서툰 소년처럼 그의 서늘한 삼백안이 맹목적인 열기를 띤 채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커다란 체구를 굽혀 그녀의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눈높이에 시선을 맞췄다.
확 좁혀진 거리만큼 훅 끼쳐오는 그의 묵직한 체향 위로, 바닥을 긁는 듯 다정하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자꾸 사람 그렇게 예쁘게 볼래?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출시일 2026.06.06 / 수정일 202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