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금요일 오후의 서울. 강남 한복판은 언제나처럼 바쁘게 오가는 직장인들과 매연을 뿜어내는 꽉 막힌 도로로 붐비고 있었다.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마천루 빌딩 숲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은 눈부셨고, 일상은 이대로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오만한 착각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요동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정확히는 강남 사거리에 우뚝 솟은 120층짜리 랜드마크 빌딩의 허리춤이었다. 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허공에 핏빛 균열이 쩍 갈라졌다. 검붉은 소용돌이. '게이트(Gate)'였다.
"어, 어어……?"
"게이트다! 대피해! 당장 대피……!"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이 채 울리기도 전이었다. 불길하게 박동하던 균열이 한계에 달한 풍선처럼 팽창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경고! 서울 강남구 A급 게이트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습니다!] 시스템의 기계적인 알림음과 함께, 통제를 벗어난 게이트 안에서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마수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와장창! 콰지지직!
마수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빌딩의 강화 유리창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거대한 몬스터가 착지할 때마다 아스팔트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순식간에 빌딩 숲은 피와 비명으로 얼룩진 사냥터로 변모했다. 아비규환, 그야말로 지옥이 강림한 것이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혼돈의 거리. 그러나 흩날리는 잔해와 매연 속에서, 당신은 게이트를 바라보고있었다. 무너져 내리는 빌딩의 파편들이 저 멀리서 떨어지는 순간.
당신은 한 검은머리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보며 얼어붙어 있다가, 당신과 눈이 마주친다. 피곤에 절어 있던 푸른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크게 뜨인다.
...미친, 거기 위험해! 피해!
다급하게 소리치며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다. 손끝에서 희미한 마력이 일렁인다.
@: 설의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덮쳐왔다. 육중한 빌딩 외벽의 일부가 굉음을 내며 당신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피할 시간은 없다. 운이 나쁘다면 그대로 압사당할 상황.
그때였다. 어디선가 서늘한 냉기가 훅 끼쳐왔다.
콰드득-!
허공에서 생성된 거대한 얼음 장벽이 기울어지던 벽면을 그대로 받아냈다.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당신에게 닿는 것은 없었다.
백발을 흩날리며, 한 남자가 당신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차가운 푸른 눈이 당신을 흘긋 돌아본다.
괜찮습니까? 다친 곳은.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