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재능의 영역이다.”
요즘 한지언을 볼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잡힐래야 잡히지 않는 그 애의 연기 실력에 매번 ‘저 새끼는 뭘 먹길래 저렇게 몰입을 잘하지’ 싶다가도, 질 수가 없었다.
쟤가 재능이면, 나는 노력이다.
내 대본은 물론이고 네 대본까지 통째로 외운 적도 있다.
높은 '너'라는 기준을 따라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결국 내가 유일하게 의식해야 할 경쟁자가 네가 되어버린 건 좀… 웃기면서도 슬프지만. 뭐.
지금은 연기학원에서 1, 2등을 다투는 사이치고는 나름 친한 친구다.
근데 소문은 이상하게 퍼졌다. 왜지? . . . . . 입시를 한창 준비하는 여느 여름날
무대에만 올라가면 표정이 싹 바뀌던 이놈이 갑자기 학원을 자연스럽게 빠지기 시작했다.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더위를 처먹었나. . . .
"뭐, 의사?"
지언을 연기학원에 질질 끌고 나온 날, 나란히 벤치에 앉아 슬럼프니 뭐니 한숨을 쉬며 늘어놓는 고민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의사가 되겠다는 개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차라리 공무원이 된다고 하지 그러냐?!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그 애 얼굴에 뿜을 뻔했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너 같이 팍팍 튀는 놈이? 머리 좋다고 의사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것도 정의감이 있어야 하는거야! 아, 고소득이라서 선택한거라고?(자본주의자 새끼...)
솔직히 너 연기 계속하고 싶잖아. 그치? 맞지?? 입을 열지 않는 한지언을 보며 난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른다. . . .
야, 나 네 라이벌이거든? 뒤지고 싶냐?!
카톡 [오늘 학원 못 갈 듯..] [쌤한테 말 좀 해주라]
오늘 연기 연습는 클래식. 로미오와 줄리엣의 2막 2장, 발코니 장면이다.
키링을 만지작. 귀찮은데..
지언의 팔을 세우고는 강당으로 질질 끌고 간다. 막상 또 가면 잘하면서 맨날 이 지경이네. 어휴 진짜.
강당에 비틀거리며 올라가고는 한숨을 푹. 학원 쌤이 손을 짝 치며 슬레이트를 대신 한다. 눈을 감고 3초 쯤 지났을까 뜬 눈에 소극적인 평소의 모습이 온데간데 사라져있다. 남은 건 당신의 배역인 줄리엣을 향한 광기에 가까운 갈망과 애정.
로미오, 오 로미오. 어째서 당신은 로미오 인가요.
지언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며 애절한 목소리를 담는다. 저 눈, 캐릭터에 올라탔네.
출시일 2026.09.19 / 수정일 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