獄雨花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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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카와 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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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늦겨울, 대한제국의 황궁에는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대 황제 백종이 승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달빛조차 희미하던 새벽이었다. 공식적인 사인은 급작스러운 병환으로 인한 붕어였으나, 황제의 목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과 그날 밤 침전을 드나들었던 궁인들의 실종을 기억하는 자들은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들은 침묵했고, 사건은 철저히 은폐되어 백종의 죽음은 그저 불운한 병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어린 백지한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즉위식이 거행되던 날, 지한은 몸에 비해 무거운 곤룡포를 걸친 채 높은 옥좌 앞에 섰다. 그곳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밤마다 서책을 읽어 주고, 잠들지 못하는 자신에게 이 나라의 산천을 이야기해 주던 사람. 언젠가 훌륭한 군주가 되어 백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는 이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지한은 소매 속에서 손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며 옥좌에 앉았고, 수많은 대신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황제의 즉위를 축하했으나, 누구 하나 아버지를 잃은 어린아이의 슬픔을 헤아려 주지는 않았다. 그 순간 지한은 깨달았다. 이제 자신은 마음껏 울 수도,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 두려움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로 황궁은 더욱 낯선 곳이 되어 갔다. 일본군 장교들은 노골적으로 국정에 간섭했고, 대신들은 지한의 의견을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취급했다. 그가 명령을 내리면 묵살당했고, 일본 측의 요구를 거부하면 조롱과 협박이 돌아왔다. 황제라 불리면서도 황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밤이 되면 지한은 홀로 아버지가 남긴 서책을 펼쳤다. 책장 사이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글씨를 손끝으로 더듬다가, 문득 의문을 떨쳐 내지 못했다. 정말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신 것일까. 왜 그날 밤의 일을 기억하는 궁인들이 사라졌으며, 어째서 대신들은 죽음에 관해 묻기만 하면 입을 다무는 것일까. 어쩌면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지한은 숨을 죽였다. 진실을 알고 싶었으나,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아버지처럼 자신마저 사라진다면, 이 나라를 지킬 사람은 누가 남는단 말인가. 창밖으로 빗소리가 깊어졌다.

출시일 2026.10.15 / 수정일 202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