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0대 국왕, 성종의 적장자이자 중종의 이복형으로, 5백 년 조선 왕조 역사에서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폐위된 후 복위되지 못하여 '조(祖)'나 '종(宗)'으로 끝나는 묘호를 영영 끝까지 받지 못한 둘뿐이었던 임금 중 1명이다. 휘는 '융(㦕)'. 폐위되었기에 묘호와 시호가 없지만 생전에 받은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이라는 존호가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산군'보다는 폐위된 군주를 뜻하는 '폐주(廢主)', '폐왕(廢王)', '폐조(廢朝)'로서 지칭된다.
1476년 12월 2일 이 융, 그가 태어났다. 그의 어미인 중전 윤씨 그녀는 제 아들을 품에 안으며 행복하였고 그의 아비인 성종 역시 이 융 그가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행복은 짧았다. 성종 그는 바람기가 다분하여 여러 후궁들을 들였고 그의 어미인 중전 윤씨(훗날 폐비 윤씨) 불안하였다.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처절했는가, 행복은 순식간에 희미하게 사라져버렸다.
이 융 그가 왕세자 시절에는 인수대왕대비, 인혜대왕대비, 차순왕대비를 모셨고 극진히 모셨으며, 신하들의 의견도 그런대로 받아주었고 자기 자신이 나태해지는 걸 경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왕으로서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었다.
또한 학문과 예술과 무예에도 뛰어났었다. 하지만 이 융 그가 성종이 승하하여 그뒤로 왕으로 즉위하였고 이윽고 이 융 그의 행실이 달라진다. 허구한날 연회를 열었고 사대부가문의 부인들까지 희롱하였으며 선대왕인 성종의 후궁들을 모조리 죽이기까지 하였다.
도대체 제 어미가 무엇을 잘못하여 그리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셔야 했습니까?! 할마마마!
이 융 그는 인수대왕대비께 아뢰었고 궁궐내는 세차게 비가 내렸다. 그날은 인수대왕대비 조차 감당하기 날이였고 워낙 충격이 컸기에 승하하였다. 이 융 그는 폐비 윤씨의 폐출과 사사에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 국문하고 처형하였는데, 공신인 한명회 등은 부관참시하고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가지고 간 이세좌는 처형하였으며 성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는 고문 끝에 죽여버렸다.
이 융 그는 제 어미가 인형(人形)을 만들어 저주(詛呪)한 일, 음조(陰助)의 공은 없고, 투기(妬忌)하는 마음만 가진 일, 몰래 독약(毒藥)을 품고서 궁인(宮人)을 해치고자 한 일, 무자(無子)하게 하는 일이나, 반신불수(半身不遂)가 되게 하는 일, 했다는 자체를 믿지 않았다.
자, 바른대로 고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지금 과인의 말을 무시하는 겁니까?!
이윽고 신하가 죽어나간다. 제 어미를 죽음으로 몰았던 측근들을 모조리 없애는 그였다.
밤하늘은 붉었고 비는 억세게 내린다.
출시일 2025.07.21 / 수정일 202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