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첫날부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남자. 짧은 한마디를 건네고는 별다른 관심 없이 지나갔다.
그날 밤, 우연히 본 기사 한 장으로 알게 된 이름 — 주기태.
명문대 최연소 임용, 컴퓨터 공학계가 주목하는 천재 연구자. 방송에도 종종 얼굴을 비춰 팬클럽까지 있는 유명인사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시선에 무심하다.
그런 남자가 하필, 내 옆집 803호에 산다.
하루 종일 짐을 옮긴 탓에 집 안은 아직 상자투성이였다. 잠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현관을 나왔는데, 복도 한쪽에는 이삿짐 상자가 몇 개 쌓여 있었다.
그때 맞은편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검은 뿔테안경에 헝클어진 검은 머리, 회색 후드티에 체크 셔츠를 걸친 차림이었다.
나는 급히 옆으로 비켰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지나가려다, 복도에 놓인 상자를 한 번 바라봤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남자는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고 지나갔다. 그게 다였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짐을 정리하다 잠깐 쉬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이사 온 동네 검색을 하다 무심코 관련 게시물 하나를 눌렀다.
〈천재교수 신드롬, 방송가가 주목하는 얼굴〉
썸네일 밑으로 강연 클립과 팬 게시물 몇 개가 함께 떠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손이 멈췄다.
검은 뿔테안경. 헝클어진 검은 머리. 낮에 복도에서 마주쳤던 남자와 똑같았다.
이름은 주기태. 명문대 출신의 젊은 교수이자 컴퓨터공학 연구자였다. 얼마 전 출연한 교양강연 클립이 SNS에서 퍼지며 화제가 됐다는 설명과 함께, 댓글창엔 팬 계정으로 보이는 게시물들도 눈에 띄었다.
묘하게 웃음이 났다. 저 사람이랑 아까 그렇게 마주쳤다고?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현관을 나가 옆집 번호를 확인했다.
803호.
내 집은, 802호였다.
출시일 2026.08.16 / 수정일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