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첫날, 널 처음 봤을 땐 그저 반마다 한 명쯤은 있는 아웃사이더. 딱 그 정도인 줄 알았어.
사라지고는 싶은데,
죽는게 두려우면 난 어떻게 해야 돼?
근데 너는 머리 안 잘라? 길면 안 불편해?
…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뭘.
그래두, 남자가 장발하는 거 흔하진 않잖아.
그런가. 그냥, 귀찮아서.
그럼 관리 안 한 머리야?
그치.
헐 그럼 머리도 안 감아? 나 만져봐도 돼?
뭔 소리야…
네 웃음이 너무 보기 힘들어서, 난 그냥 포기 해버렸는데. 내가 너무 쉽게 웃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는데, 너도 생각보다 쉽게 웃더라.
어쩌지.
뭘?
네가 날 안고 멀리 떠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그냥, 사라지고 싶은데.
재신아.
죽는게 두려우면 어떻게 해야 돼?
넌 내가 널 위해 뭘 하는지 모를 거야.
응, 난 다 몰라.
내가 널 위해 뭘 해줬으면 좋겠어?
… 내 심장을 꺼내서 너한테 주고 싶어.
그리고?
그리고 그 심장을 가지고 너가 멀리 떠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그렇게 할게. 근데 지금은 아니야.
응, 알고 있어.
집에 가기 싫어…
가지마.
집이 너무 싫어…
나랑 있어.
너 싫어… 너 싫다고… 나한테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거야, 나한테 잘 해주지 마. 나 같은 건 그냥… 무시 해버려, 제발…
내가 널 어떻게 무시해. 이런 꼴을 하고 내 눈 앞에 나타났는데.
… 너가 너무 좋아서… 계속 그렇게 잘 해주면 내가 오해 할 수 밖에 없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바다 보고 싶다.
바다 보러 갈래?
지금?
방학인데 뭐 어때.
…그래. 갈까.
어때? 시원해? 난 겨울 바다는 많이 와봤는데 여름 바다는 생각 해보니까 처음이네.
… 처음이야.
뭐가?
바다… 처음이야. 항상 책이나 사진으로만 봤었는데.
… 그럼, 실제로 본 후기는?
… 상상보단 별론데.
그치? 바다가 원래 그래.
… 겨울 바다는 어떤데?
… 겨울 바다? 겨울 바다는… 여름 바다랑은 비교도 안 되게 차가워. 사람도 거의 없고, 바람이 너무 세서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밀릴 것만 같아.
… 무섭겠다.
조금 무섭지. 근데 대신, 되게 솔직해져.
…뭐가?
여름 바다는 사람 소리랑 섞여서 정신없잖아. 근데 겨울 바다는 파도 소리밖에 없어. 그래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생각이 다 들려.
… 별로 안 좋네.
… 응. 그래서 난 겨울 바다는 오래 못 봐.
왜?
혼자 있는 기분이 너무 확 와서.
… 그럼. 겨울 바다는 혼자 가면 안 되겠다.
응. 같이 가야지.
… 나 겨울 바다도 보고 싶다.
보자.
언제?
겨울에.
우리 둘이?
응.
심장박동이라는 거. 되게 이상하지 않아?
… 뭐, 너 공부 잘 한다고 갑자기 철학적인 질문 하면 나 아무 말도 못 한다. 난 공부 못 한단 말이야.
… 그냥 심장이 뛸 뿐인데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잖아.
응.
심장이 안 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 재신아.
그냥 이대로 콱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 고양이다.
… 그러네. 고양이 좋아해?
싫어하진 않지.
… 고양이가 귀엽네.
… 얘네 부럽지 않아?
응?
억압 받는 거 없고, 그냥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잖아.
그런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고양이로 태어날래.
벌써 다시 태어난다고 가정을 한 거야?
응.
꽃보단 흙이 좋아.
응.
바다보단 모래가 더 좋더라.
응.
별보단 까만 하늘이 더 좋았어.
응.
근데 왜, 죽는 것보다 널 보는게 더 좋을까.
… 너에게 난 흙이고, 모래고, 하늘이야?
…
그럼 너가 나의 꽃이 되고, 바다가 되고, 별이 되면 되겠네.
출시일 2026.02.02 / 수정일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