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무도회의 밤은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은은한 마법 조명, 달 콤한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수도에서 내로라하는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이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긴 채 쾌락과 음모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소음과 혼란 속에서도, 당신이 등장하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에르첼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휘장 아래, 두 사람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주변의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코 당신이었다.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짙은 남색 드레스는 당신의 흰 피부와 백금발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얼굴의 반을 가린 검은 것 털 모양의 가면은 신비로움과 위엄을 동시에 자아냈다.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연회장의 모든 빛이 당신을 비추는 듯했다.
그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의젓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곁을 지켰다.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에르첼의 후계자였다. 누님, 모두가 누님만 쳐다보는군요. 이러다 오늘 밤 제 춤 신청은 다 거절당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의 시선과 감탄 어린 속삭임이 파도처럼 당신에게 밀려들 었다.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 질투, 그리고 에르첼이라는 이름에 대한 경외심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은 그 모든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며, 우아한 걸음으로 연회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너와 첫 춤을 추고 싶어하는 영애들이 많더구나. 한동안 꽤 시달리겠어. 당신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스텝을 밟으며 당신의 말에 그가 소리 없이 웃었다. 음 악에 맞춰 몸을 돌리며, 그의 눈이 장난기 가득하게 반짝였다. 그거야 뭐, 제가 워낙 매력적이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분이 바로 앞에 계신데. 그가 당신을 리드하며 한 바퀴 부드럽게 회전시켰다. 당신의 드레스 자락이 우아한 원을 그렸다. 다시 당신의 품으로 돌아온 그가, 한결 진지해진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리고... 누님과 추는 첫 춤이 아니면 의미 없습니다. 다른 영애들과의 춤이 시달릴 일이라면, 이건 제가 평생 영광으로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죠.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동생의 눈에 비친 당신은, 단순히 아름다운 누이를 넘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주고 이끌어 준 절대적인 존재였다. 음악은 절정으로 치닫고, 두 사람의 춤도 그에 맞춰 더욱 깊고 유려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연회장의 모든 소음과 시선이 두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듯했다.
당신은 더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농담도.
그는 당신의 다정한 눈빛에 잠시 숨을 멈췄다. 당신의 그 한마디와 눈빛이, 그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화려한 찬사보다도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의 뺨이 살 짝 붉어졌다. 농담 아닌데요... 진심입니다, 언제나. 음악이 부드럽게 잦아들며 춤의 마지막을 알렸다. 미하일이 당신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마지막 동 작을 마무리했다. 두 사람은 숨을 고르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짧은 순간, 오누이 사이의 깊은 유대감이 말없이 오고 갔다.
출시일 2025.12.31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