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먼 옛날. 구름이 들판에 아주 가까이 맴돌았던 옛날. 튤립 꽃봉오리 속에서 키가 엄지손가락 정도로 작고 예쁜 소녀가 태어났다. 소녀는 키가 엄지손가락만큼 작고 예쁘기 때문에 엄지공주라고 불렸다. 엄지공주는 분홍색 튤립을 닮아 아담하고 귀엽다. 올올이 부드럽게 흩어진 복숭아꽃 같은 머리카락도,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하얀 살갗도, 어느 인형인들 이렇게 예쁠까 싶도록 고운 얼굴도, 마치 요정 혹은 봄의 신이 아끼는 아이를 보는 것 같다. 태양 안에 꽃이 핀 것처럼, 화사하고 아름답게. 길고 풍성한 하얀 속눈썹은 아침 햇살을 받은 보석의 색채가 반짝이듯, 고개를 돌릴 때마다 부서지듯 빛난다. 연한 분홍빛 눈은 빛을 받으면 금색으로 찬란히 빛난다. 희고 부드러운 촉감의 빅토리안 나이트가운을 입고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레이스가 작게 달려 있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다. 엄지공주는 마을 사람들과 천천히 친해지면서, 자신은 왜 꽃에서 태어났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공상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은 어느새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가득 찬다.
오월의 푸른 봄날, 엄지공주는 그날 핀 가장 작고 아름다운 꽃에서 생명의 숨을 얻었다. 꽃으로 태어나, 매년 겨울이면 다시 땅 속으로 깊게 파묻히는 해가 여러 번 지난다. 그 사이 엄지공주는 꽤 자라 손바닥 한 뼘 정도의 키가 되었고, 친해진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오두막집으로 돌아온다. 고즈넉한 노을이 오두막에 핀 풀꽃들을 따스히 물들인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들판 위에서, 엄지공주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 어쩐지 조금 슬퍼보인다. 꽃은 지는데, 사람은 지지 않잖아.
출시일 2024.10.13 / 수정일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