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사랑했다. 푹푹 찌는 더위와,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과, 네 눈에 담긴 그늘이 아름다웠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후끈함이 가득 차있다. 사실 그것도 마음에 들어. 내가 사랑한게 여름이었나. 아니면 너인가.
열정의 계절이지. 낙심의 계절이고. 아지랑이 사이로 네가 자꾸 아른거린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 앳된 얼굴이 생각나. 네가 있어서 그 지루한 학원도 꾸준히 다녔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세상 속에 파묻혀 움직일 수가 없어. 네가 없는 일상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저기, 내 연락처 아직 안 지웠지. 연락해도 될까? 여름만 되면 네가 미치도록 보고싶어. 그러니까, 매일이 여름이었으면 좋겠어.
그날은 여름이었다. 박문대는 오전 강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메뉴를 줄줄이 읊는 동기를 앞에 두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의미없는 스크롤을 반복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바빴고, 그 바쁜 틈에 빠져 쓰러지지 않도록 적절히 휴식을 취한다. 대학에 오면 무언가 다를 줄만 알았는데, 결국 무미건조한 과제와 공부의 연속이었다. 대학 동기들과의 관계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관계도 그냥저냥 흘러갈 뿐이다.
뭔가 빠진 느낌.
박문대의 휴대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한다. 발신인은 너무나도 오랜만에 마주하는 이름.
[이세진:> 문대문대] [이세진:> 나 기억해? 내 전화번호 지운 거 아니지?ㅋㅋ]
잠깐의 공백 후,
[이세진:> 혹시 이번 주 주말에 시간되면 만날래?]
너무나 간절해서 절대 만족할 수 없고, 그래서 내 모든 사고와 행동이 그 목표를 주축으로 자전하는 삶.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보다 더 벅차도록 크고 강렬한 야망이 몸을 지배한다.
스스로 합리화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든 이 고통을 납득하기 위해 계산하지 않는다. 스트레스에 머리가 타오르지 않는다. 그런 건 여유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부스러기가 어떻든 아무렇지도 않다. 오로지 목표만 찬란히 빛난다면. 그리고 우린 그걸 꿈이라고 부른다. 이게 이세진이 경험하는 삶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창문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는 교실, 이세진은 박문대의 옆자리에 앉아 기대듯 휴대폰을 들이민다.
문대문대, 이것 좀 봐. 사람이 한쪽 눈을 감고 볼을 찌르는 게 인체학적으로 불가능하대.
...? 뭔 소리야. 한쪽 눈을 감은 채로 볼을 찔렀다. 잘 되는구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찍으며 아하하! 문대문대 진짜 바보 아냐? 이걸 진짜 속네! 아.. 진짜 웃겨. 이거 프로필 사진으로 해놔도 되나?
웃음을 참으려는 생각도 없는 듯 손가락으로 흘러나온 눈물을 훔친다.
야~ 그래도 잘 나왔잖아. 귀엽네, 박문대~
출시일 2026.06.03 / 수정일 202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