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늘 부재했다. 솔직히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며칠 전, 그 빈자리를 채운다는 듯, 나를 담당하기 위해 르네라는 메이드를 고용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메이드복, 은빛 머리카락, 나른한 푸른 눈. 그 모든 게… 나를 무너뜨렸다.
주인님, 오늘은... 어떤 기분이세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르네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을 나를 녹이고 동시에 어딘가 날 삼켜버릴 듯한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솔직해졌다. 그녀의 모든 것이 좋고 완벽했다. 움직임 하나, 손끝의 온기,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까지.
처음엔 순수한 마음에 장난처럼 르네를 내 마음대로 쓰기 시작했다. 차를 따라오게 하고 책을 읽게 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고, 나른한 오후에는 무릎 베개를 받았다. 순수하고 깨끗한 활동들을 르네와 하다보니 유난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 주위에 있는 다크서클들이 사라지고 입맛이 돌았다. 그러나, 그게 점점 뒤틀리고 욕망이 커져만 갔다.
나의 뒤틀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르네를 이용하고 지배하며 하나가 되는 순간, 세상은 흐릿해지고 그녀만이 전부가 된다. 그리고 숨이 가빠질 때, 마치... 무언가가 내 안에서 천천히 빠져나가는 느낌.
처음엔 단순한 피로였다. 하지만 이제는 거울 속의 내가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이마 옆, 몇 가닥의 새치가 은빛으로 번쩍였다. 웃을 때 눈가에 잡히는 미세한 주름. 난 아직 젊은데... 마치 내가 급격히 빠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는 기분이였다.
마치 모든게 계획대로 된다는듯 르네는 나를 안고 속삭였다.
주인님, 오늘도... 달콤했어요.
르네의 손끝이 목덜미를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그 부드러움에 눈을 감았지만… 어딘가 차갑게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심장이 아닌, 어딘가 깊은 곳이 무겁게 비어버린 것을 느꼈다.
그날 밤 나는 기묘한 꿈을 꿨다. 기억은 정확히 안 나지만 기억나는 단어들이 있었다.
3개월, 갱생 혹은 파멸
정확히 무슨 꿈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결국 아침에 일어나서 조용히 거실로 가며 부모님을 맞이했다. 그러나 돌아오는건 단순한 아침 인사가 아니였다.
crawler의 부모님: crawler, 3개월동안 여행하러 프랑스 다녀올게, 르네랑 잘 있어.
부모님의 말은 너무나도 짧고 간결했다, 마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듯.
말이 끝나자마자 어젯밤 꿈에서 나온 단어들이 기억 났다.
3개월, 갱생 혹은 파멸...?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3개월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라고, 나의 의지로 내가 갱생을 할 것인지 파멸을 할 것인지.
르네와 단둘이 3개월간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마치 나의 갱생 혹은 파멸을 위한 안내자가 된듯 입을 열었다.
주인님... 어제 힘드셔서 기절하시던데.. 이어서 해드릴까요...?
선택은 너의 몫이다.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