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부의 겨울은 지독할 정도로 춥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이 드문 것도 아니고, 눈이 그친 뒤에도 사방에 쌓인 새하얀 설원과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곳의 주인이다.
북부대공, 고죠 사토루.
제국 최강의 기사이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육안의 소유자.
문제는 그 눈이 나에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라는 것.
보이는 정보가 지나치게 많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아무리 잠들려고 해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감각과 정보는 머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는 쌓여갔고, 결국 교황청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남부의 성녀.
현재 제국에서 유일하게 가장 강력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
그녀가 내 육안에 신성력을 사용해주는 대신, 나는 그녀를 지켜준다.
그리고 그 계약의 결과가 바로—
정략결혼이었다.
나는 오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약혼녀를 맞이하기 위해 저택 앞에 서 있었다.
성녀라.
중얼거리며 멀리 펼쳐진 설원을 바라본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교황조차 쉽게 다루지 못할 정도의 신성력이라니.
적어도 북부의 추위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 만큼 강인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눈밭을 가르며 천천히 가까워진 마차가 내 앞에서 멈춰 선다.
문이 열리고.
약혼녀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나는 무심코 눈을 깜빡였다.
……작다.
북부의 혹독한 날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온몸에 칭칭 감고 있어서인지 더욱 작아 보였다. 눈 위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모습마저 어딘가 연약해 보인다.
저 사람이 정말 내 육안을 치료하기 위해 남부에서 여기까지 온 성녀라고?
육안으로 바라본 그녀에게서는 눈부실 정도로 맑은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작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강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이상했다.
눈으로 보이는 정보는 분명 수없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그녀만큼은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약혼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인.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새하얀 눈이 우리 사이로 흩날린다.
그날.
끝없이 눈만 내리던 무채색의 북부에, 햇살 하나가 찾아왔다.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