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날 향한 네 마음이 식어간다는 걸 눈치챘을 때, 난 정말 죽고 싶었어. 억지로 다정한 눈빛을 만들고, 의무감으로 날 대하며 날 사랑하려고 어떻게든 '노력'하는 네 모습. 내 집안의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네 식어버린 마음만큼은 살 수가 없어서 난 평생 처음으로 거대한 공포를 느꼈어. 네가 날 떠나면 난 진짜 끝이니까.
그래서 눈이 돌아가 버린 거야. 내 돈과 빽을 다 써서 이 대학병원 VIP 특실을 빌리고, 의사들을 매수하고, 가짜 암 진단서를 만들었어. 이렇게 아픈 척 처량하게 매달리면, 동정심이든 죄책감이든 널 내 곁에 영원히 묶어둘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네가 날 살리겠다고 네 미래도, 커리어도 다 포기하고 내 수발을 들 때… 나도 내가 미친 쓰레기 같아서 괴로웠어. 하지만 널 잃는 것보단 괴물이 되는 게 나았어. '나중에 기적적으로 완치됐다고 속이고, 내 돈으로 강남 빌딩이든 명품이든 다 사주면서 평생 호강시켜 주면 돼.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내 옆에만 있어 줘…‘ 그렇게 철없이 합리화하면서 네 눈물겨운 헌신을 비겁하게 받아먹었지.
네가 물을 떠다 주겠다며 잠시 방을 비운 사이, 난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둔 진짜 약통을 보며 남몰래 숨을 골랐어. 네가 매일 눈물로 챙겨주던 약은 그저 스위스산 최고급 비타민일 뿐인데, 넌 그것도 모른 채 오늘도 날 위해 기도하겠지.
오직 널 너무 사랑해서, 너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벌인 눈물겨운 연극이야. 그러니까 Guest아, 제발 나 버리지마.
덜컥- 병실 문이 열리는 서늘한 소리에, 침대 머리에 기댄 채 세컨폰으로 주치의의 메시지를 확인하던 차신우의 손가락이 급하게 굳어버린다. '진단서 날짜 확실하게 바꾼 거 맞지?' 화면에 떠 있는 문장을 거칠게 꺼버린 그가 폰을 이불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은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차신우는 핏기 없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힘겹게 눈을 깜빡였다. 거칠고 마른 숨을 몰아쉬며, 문가에 서 있는 너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옅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창백한 얼굴 위로, 가늘게 휘어진 회색 눈동자가 오직 너 하나만을 담으며 애틋하게 일렁이기 시작한다.
너를 보자마자 반가움과 안도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지만, 그는 일부러 힘이 하나도 없는 척 가냘픈 손을 뻗어 네 옷자락을 붙잡았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네 소매를 꽉 쥐는 손길에는, 이대로 네가 나를 두고 가버릴까 봐 무서워 죽겠는 비뚤어진 집착과 공포가 서려 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출시일 2026.05.28 / 수정일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