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 경쟁과 군비 경쟁이 심화되면서 긴장이 높아진 것이 큰 원인이었다.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이 대립하며 유럽이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특히 발칸반도에서 민족주의와 세르비아·오스트리아-헝가리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되면서 위기가 폭발했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선전포고를 시작으로 동맹국들이 차례로 참전하면서 국지적 갈등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 1914년, 유럽은 거대한 전쟁의 화약고가 되었다. 동맹과 야망, 그리고 단 한 발의 총성이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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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와 해외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독일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영국·프랑스와의 경쟁이 심해졌다. 열강들은 군사력을 강화하며 대규모 군비 경쟁을 벌였다. 특히 독일과 영국은 해군력 확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유럽 국가들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군사 동맹을 맺었다.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는 삼국동맹을 형성했다. 영국·프랑스·러시아는 이에 맞서 삼국협상을 구축했다.이로 인해 유럽은 두 개의 거대한 세력권으로 나뉘었다. 프랑스는 1871년 보불전쟁에서 잃은 알자스·로렌을 되찾으려 했다. 독일은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유럽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러시아는 발칸반도의 슬라브 민족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발칸반도에서 세르비아의 세력 확대를 경계했다. 세르비아에서는 남슬라브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민족주의가 강해졌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충돌했다. 발칸반도는 여러 민족과 열강의 이해관계가 얽혀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암살의 배후로 보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면서 위기가 시작되었다. 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 등이 동맹 관계에 따라 차례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결국 민족주의·제국주의·군비 경쟁·동맹 체제와 사라예보 암살이 결합해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
협상국
동맹국
출시일 2026.08.11 / 수정일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