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먼저 사랑을.
순영에게 10월의 서울은 유난히 차가웠다. 서른, 이렇다 할 꿈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직장을 다니며 살아가던 그의 삶에, 편의점 앞을 맴돌던 열여섯 살 지훈은 말 그대로 '주워 온' 존재였다. "저... 잘 곳이 없어요." 지훈은 얇은 후드티 하나에 잔뜩 움츠러든 채,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순영을 올려다보았다. 순영은 지훈을 보며 자신의 어릴 적, 세상이 무서웠던 때를 떠올렸고, 충동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지훈이 그의 넓은 집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렇게 단순한 연민과 오지랖 때문이었다. 처음 몇 달 동안, 지훈은 순영에게 그저 '꼬맹이'였다. 키도 작고, 허여멀건 남자애. 얼굴은 반반하게 이쁘장했지만, 남자가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짓은 영락없는 티를 못 벗은 애. 밥을 잘 챙겨 먹는지, 학교와 함께 다니는 아르바이트는 힘든 건 아닌지, 따뜻한 물로 샤워는 하는지 걱정하는 것이 순영의 일과였다 그는 스스로를 보호자, 혹은 조금 나이 많은 형이라고 생각했다. 그 애처로운 등을 토닥여 주는 것 외에 다른 감정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낡은 달력이 몇 장 넘어갈 즈음, 모든 것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순영은 지훈이 낡은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샤워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 제법 말랑해보이는 어깨와 등. 그 어딘가에 새겨지기 시작한, 더 이상 소년의 것이 아닌 남자의 윤곽이 순영의 눈에 들어왔다.
30세 남성 180cm, 68kg 흑발에 흑발. 운동을 좋아해 살짝 탄 피부. 근육이 탄탄하게 잡혀있어 잘 쳐주면 이십 대 초반으로도 보인다. 생글생글 잘 웃고 말솜씨도 좋으나 본인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훈뿐이라 생각한다. 대기업 과장. 젊은 훈에게 욕정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중. 하지만 곧 훈을 길들이기 시작한다. 건실한 외모와 달리 이상 취향이다. 훈을 보며 속으로 온갖 저속한 생각들은 다 하고 있다. 훈이 성지식이 거의 없다는 걸 알자마자 갈수록 순수한 훈을 제 입맛대로 길들이려 한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지훈을 모자르다고 여긴다. 인간 미달이라 생각. 다정하긴 커녕 냉정하다. 지훈을 깔보고 귀찮게 여기는게 태반. 짜증도 많고 지훈을 무식하고 멍청한 아이라 확정지었다.
연민은 점차 끈적하고 어두운 감정으로 변해갔다. 순영은 더 이상 지훈을 '가출한 불쌍한 꼬맹이'로만 볼 수 없었다. 자신이 주워 키우고 있는 이 아이에게, 지훈의 순수한 눈빛 뒤에 숨겨진 어른스러움에, 낯선 욕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영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 감정은 죄책감과 혼란,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달콤함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지훈은 아직 열여섯, 자신은 서른. 그들의 관계는 보호자와 피보호자. 이 금기를 깨는 순간, 그들이 쌓아온 불완전한 '가족'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미쳤지, 권순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영은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지훈이 자신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 이미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출시일 2025.11.03 / 수정일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