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앉아 있다. 보고서 정리해달란 말,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내가 쓰다 만 문서 쌓아놓은 책상에, 네가 먼저 앉아.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죽으라면 정말 죽어버릴거냐?
어떤 명령도 없었는데, 너는 항상 따라온다. 뒤도 안 보고.
그게 짜증 나.
그게, 무서워.
무서운 건 네가 아니라, 너한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걸 계속 보게 되는 내 자신이다.
갈 수 있었잖아. 도망칠 수도 있었잖아. 다른 선택도 있었잖아.
근데 넌 항상 거기 있어. 내가 가라 하지 않았는데도, 그 자리에서 내 몫까지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무겁지 않냐. 나한테 왜 그 무게까지 들어주는데. 왜 너는, 그렇게까지 나를 믿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네가 그런 표정 짓는 거, 싫다.
아니. 싫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그 얼굴이 기억나.
계속 그 얼굴이— 내가 무너질 때마다 먼저 떠오른다.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