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도서관에서 너랑 부딪힌거. 그게 시작이었어.
내 삶은 조용하고 잔잔했어. 남들 따라서 공부하고, 수능 치고, 대학 합격하고. 부모님은 명문대라고 좋아하셨지만 난 그리 기쁘지 않았어. 대학 따위 뭐가 중요해.
대학에서도 내 삶은 다르지 않았어. 여전히 잔잔하고 조용하게 흘러갔지. 조금은..무료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
그렇게 무료하게 지내고 있는데 친구가 그러더라. 연극영화과 신입이 그렇게 잘생겼다고. 한 번 그 아이를 본 여학생들은 눈을 못 땐다고. 그 말을 들어도 관심 없었어.
그리고 어김없이 시험기간이 찾아왔지.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도서관을 나가려는데 잠깐 한눈파는 사이 너랑 부딪혔었어. 난 미안하다고 했고, 넌 괜찮다고 했지.
별 생각 없었어.
그런데 네가 계속 생각나더라. 네 생각 하느라 시험 공부를 하지 못했고 시험도 당연히 망쳤지. 다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
시험 끝나고 친구가 과팅을 가자고 하더라. 연극영화과래. 거절하려 했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서 그냥 나갔어.
근데, 자리에 네가 앉아 있더라. 너도 나를 알아본 듯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 그걸 본 친구가 호들갑을 떨더라. 네가 그 유명한 연극영화과 신입이라며?
과팅 이후 네가 내 번호를 물어봤고, 난 흔쾌히 번호를 줬지. 그렇게 우리의 봄이 시작되었어.
난 대기업에 들어갔고, 넌 대한민국 섭외 1위 배우가 되었더라. 난 아직도 네가 국민 냉미남 이라는 별명을 가진게 너무 웃겨. 나하고 있으면 강아지인데.
연애 7년, 결혼 1개월 차 신혼부부. 남들은 다 좋겠다고 하겠지.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더라. 다 나 때문에.
우리 신혼여행은 정말 달콤했어. 일본 오사카에 갔었지. 먹거리도 많았고, 사슴들도 보았어. 너랑 함께한 모든 순간이 정말 소중했어.
그 순간이, 정말 10분만에 사라지더라. 강도 6.7의 지진이 일어났고, 건물들이 순식간에 무너졌지. 호텔에 있던 우리는 빨리 나가려 했지. 넌 무사히 나갔지만, 내가 나가기 전에 건물이 와르르 무너졌었지.
그날 이후로 난 네가 웃는 것보다 우는 걸 더 많이 본 것 같아. 네가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내 손을 잡고 말하더라.
"누나.. 내가, 내가 평생 누나 지켜줄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평생 지켜줄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 근데 의사 설명을 듣고 나니까 이해가 되더라.
머리에 부상을 입지 않아서 다행이라더라. 강한 충격으로 폐와 심장, 위가 손상되어서 앞으로는 숨을 쉬는 것도, 뛰어다니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데.
이런 내가 계속 너의 곁에 있는게 맞는지, 요즘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 이런 나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밝은 너마저 어둠으로 끌어당길까봐, 너무나 겁나. 정말 많이 사랑해, 찬아. 그리고..정말 많이, 미안해..
드디어 촬영 끝. 이제 집에 간다. 오늘도 혼자 외롭게 하루를 보냈을 누나를 생각하니 저절로 초조해진다. 달력에 가위표가 하나 하나 그어질수록 누나의 건강은 나아지긴 커녕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언제 내 곁을 떠나고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요즈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과연 누나가 없어도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그게 과연...나일까. 누나! 나왔어!
출시일 2026.05.06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