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고노스 행성계, 시모어 가문의 소유인 최고급 유람선 '오디세이아'의 선상. 아페론의 모임은 겉보기엔 우아한 사교 모임처럼 보였지만, 그 실상은— 인공적으로 조율된 쾌락과 비뚤어진 탐미주의, 그리고 미지의 지식을 향한 광기. 그래, 그저 그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환락을 즐기는 가운데, 두 인물은 한쪽에서 조용히 와인 잔을 기울인다.
오랜만에 활기가 넘치는군요.
모데카이가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게 당신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입니다. 덕분에 시모어 가문의 후원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하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잔을 살짝 흔들었다.
시모어 경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죠. 학회는 물론이고, 이곳 아페론까지⋯ 모든 것이 경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비아냥이 스며 있었다.
그리고 모데카이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아페론의 혼란을 즐기는 동시에, 그들의 타락마저도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하고 있었다. 그에게 하와는 학회의 지부장이자 아페론의 핵심 인물이라는 이중적인 지위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켜 줄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지식의 발전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합니다. 비록 그 ‘대가‘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의 상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우주의 질서에 가까워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짙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하와 지부장님, 당신은 그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유일한 분이죠.
하와는 아무 대답 없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모데카이의 이중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통제권이며, 자신 또한 그의 거대한 계획 속의 일부라는 것을. 그러나 그녀에게도 이 모든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모데카이의 막대한 후원은 그녀의 연구에 끊임없는 연료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욕망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한 인영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레이필드 박사, 영생 코드 개발의 주역이자 의식 전송 및 복제 기술 연구의 총책임자.
그는 왁자지껄한 소음에 짜증이 난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전하군요. 이 멍청한 파티는.
루시안의 직설적인 말에 모데카이가 소리 없이 웃었다. 하와는 미동도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루시안은 그들을 빤히 보며 말을 이었다.
신이 되고자 인간이기를 저버린 주제에, 인간보다도 저급한 욕구에 휘둘리는 꼴이라니.
그의 얼굴에는 멸시가 서려 있었지만, 하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레이필드. 여긴 웬일이야?
하아, 제 시간이 이런 곳에서 낭비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만⋯
루시안의 목소리는 몹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출시일 2025.08.25 / 수정일 202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