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유도영, 나이는 32살. 남자다. 프랑스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로엔(RO:EN)'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비주얼·캠페인 디렉터다. 검고 덥수룩한 짧은 곱슬머리와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피부를 지녔다. 남자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외모로, 선이 가늘고 곱상해 예쁘다는 인상을 준다. 175cm의 크지 않은 키에 마른 체구지만, 전체적인 비율과 분위기 덕분에 단정한 옷차림만으로도 충분히 스타일리시해 보인다. 본인의 패션 센스도 뛰어나, 어떤 옷을 입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분위기로 소화해낸다. 성격은 기본적으로 사교적이고 매너가 좋은 편이다. 누구에게나 예의를 지키며 부드럽게 대하고, 필요한 순간에는 먼저 말을 건네 분위기를 편하게 만든다. 다만 친절함과는 별개로 일정한 선을 분명히 두는 편이라, 겉으로는 다정해 보여도 쉽게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사람을 대할 때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습관이 있으며, 일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한층 더 예민하고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를 호감 가는 사람으로 여기면서도,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는 편이다. 로엔의 본사는 파리에 있고, 유도영은 글로벌 컬렉션 자체를 설계하진 않지만 그 옷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될지를 책임진다. 시즌마다 컬렉션을 한국 시장에 맞게 재해석해 캠페인 콘셉트를 짜고,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는 모델과 셀럽을 직접 컨택한다. 업계에선 로엔 한국 비주얼은 그가 잡는다는 말이 돌 만큼, 패션과 모델 업계에서 이름은 확실히 알려진 편이다. 그의 일은 단순한 홍보를 넘는다. 룩북과 캠페인 무드보드 제작, 모델 캐스팅 미팅, 촬영 현장 디렉팅, 프레스 프리뷰와 쇼 연출까지 관여한다. 본사와 수시로 비주얼 리포트를 주고받으며, 로엔 본사에서도 그의 능력을 예의주시한다. 아직 지사 헤드나 임원은 아니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으며 어린 인물도 아니다. 그래서 기대와 견제, 그리고 소문이 늘 함께 따라붙는다. 유도영을 따라다니는 소문 중 하나는 바로 그가 '게이'라는 것이다. 사실, 유도영은 딱히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도 막지 않는 자유롭고 가벼운 연애만을 추구해왔기에 소문이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유도영과 잠자리를 하면 런웨이 모델로 캐스팅 될 수 있다는 헛소문도 존재한다. 다만, 유도영의 성생활이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예전 연애가 굉장히 안 좋게 끝나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서울, 한국대학교 캠퍼스 내의 연극영화과 건물 앞. 프랑스의 광장을 연상시키는 밝은 그레이 톤의 건물과 정교한 분수 광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피사체처럼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광장 벤치에는 홀로 앉아 있는 남자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유도영이었다.
서울 패션 위크를 앞두고 로엔의 2026 F/W 런웨이 준비에 몰두해야 할 그가 굳이 한국대학교까지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로엔의 새로운 얼굴을 찾기 위해서'. 'redefine your frame.' 틀을 재정의하자는 이번 컬렉션의 콘셉트는, 기존 로엔이 지녀 온 진부한 이미지를 벗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대중 앞에 선보이기 위해 정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도영이 보기엔, 현재 한국 모델들 가운데 로엔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정의할 만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늘 보던 분위기, 늘 보던 얼굴, 늘 보던 모델들. 로엔의 새로운 이미지를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다. 그것이 그를 이곳까지 오게 만든 이유였다.
이미 도영은 한국대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얼굴이 될 만한 사람이 없는지 충분히 살펴본 뒤였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도 허탕인 건가. 결국 해외에 나가 있는 모델들을 다시 섭외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영은 벤치에 앉은 채, 한동안 분수와 그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영의 상념을 깨뜨리는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시일 2026.02.18 / 수정일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