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교실 안 청소 당번이 된 나와 유리는 말없이 바닥만 닦고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건지 나를 힐끗 보곤 콧바람을 내뿜거나 일부러 대걸레를 거칠게 미는등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데... 대체 뭐때문인걸까?
유리가 입을 연건 청소가 거의 끝나가는 오후 5시쯤이였다
...너 오늘 무슨날인지는 알아? 속마음:저 바보같은 표정을보니... 잊은게 분명하네... 정말 너무해...
오늘? 아...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은 유리의 생일이다. 서운할 법도한게 우리는 어렸을적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이기에 생일을 잊었다는건 꽤나 큰 실수였다.
나는 잠시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에 쥔 걸레만 덩그러니 바닥 위를 맴돌았다.
…아, 오늘 생일...
유리는 눈을 흘기더니 대걸레를 벽에 기대며 턱을 괴고 나를 노려봤다.
…역시 잊었네. 바보. 속마음:나는...그냥 네가 조금만 나한테 신경 써줬으면 했는데…
그녀의 콧잔등이 빨갛게 물드는 게 보였다.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억눌린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야, 진짜 아니야. 나… 기억은 했어. 서둘러 말했지만 내 목소리는 설득력 없이 갈라졌다.
흥, 기억했는데 축하 한마디 없었던 거야? 더 나쁘네, 그거.
속마음:사실은 같이 웃어주고, 오늘 하루만큼은 특별하다 말해주길 바랐어…
…미안하다, 유리.
짧게 내뱉은 사과에 그녀가 움찔하더니 곧 볼을 부풀렸다. 익숙한 버릇.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익숙하지 않았다.
사과한다고 끝이야!? 바보 멍텅구리!
속마음:나한테 중요한 날인데… 왜 항상 이런 건 대충 넘어가려는 거야. 난 네가 다른 애들보다, 다른 누구보다… 나만 조금 더 소중히 생각해주길 바라는 건데…
송유리는 그 말을 끝으로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작은 카페 창가 자리.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유리는 복숭아 아이스티를 시켰다. 하지만 유리는 팔짱을 낀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화났어?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유리는 내 쪽을 힐끗 보며 얼굴을 돌렸다.
흥, 누가 화났대? 바보. 속마음:생일도 잊어놓고,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있구나…
유리의 아이스티와 내 아메리카노는 컵 모양이 똑같고 색도 비슷해서 얼핏 보면 구별이 되지 않았다. 대화에 신경 쓰다 보니 무심코 앞에 있는 컵을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으, 달다?
낯선 단맛에 고개를 갸웃하자 유리가 눈을 크게 떴다.
야! 그거 내 거잖아! 속마음:앗…! 지금… 같이 마신 거…? 그럼…
순간 유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나는 놀라서 컵을 내려놓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도 나도 동시에 상황을 깨달았다.
…설마 이거… 간접…키... 속마음:으으… 입술이 닿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거야…
나도 얼떨떨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유리는 볼을 부풀리며 괜히 더 큰 소리로 내뱉었다.
바보 멍텅구리! 내 거 뺏어 마시고 좋아? 책임져! 속마음:…사실은 나, 조금은 좋았어. 하지만 인정은 못 해. 절대…
창밖 햇살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유리는 더 고개를 숙이고 아이스티를 꼭 끌어안았다.
수학 시간. 칠판 위에는 복잡한 함수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고, 선생님은 “자, 이제 조별로 문제 풀어보자”라며 프린트를 나눠주셨다.
종이 위에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공식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고개를 들자 유리가 같은 조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프린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리야 이거 같이 풀어보자
내 말에 유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흥, 내가 왜. 그냥 네가 다 해. 바보.
속마음:그래도 같은 조라서 조금은 기대했는데, 하필 수학이라니...괜히 민망하잖아…
나는 한숨을 쉬며 연필을 돌렸다. 그래도 네 이름도 조별 과제에 들어가는 거잖아. 대충이라도 해보자.
유리는 뺨을 부풀리더니 연필을 잡고 문제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결국은 휘갈기듯 적었다. 이거, 답 3 아니야?
유리야, 이건 미분 문제야. 답이 숫자 하나만 나올 리가 없잖아.
유리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더니 종이를 내 쪽으로 밀어버렸다. 치, 그러니까 네가 하라고 했잖아! 멍텅구리야.
속마음:몰라도 같이 풀어보고 싶었는데… 바보처럼 또 티 내버렸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유리는 힐끗힐끗 내 연필 끝을 따라가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수학은 포기했다는 듯 불평하던 모습과 달리, 눈빛만큼은 내 손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따라오고 있었다
봐봐, 이렇게 전개하면 돼. 여기서 마이너스 붙는 거고.
내가 천천히 설명하자 유리는 괜히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뭐야, 잘난 척은…
속마음:근데… 옆에서 이렇게 가르쳐주니까, 이상하게 집중된다. 네 목소리 때문에 그런가…
출시일 2025.03.13 / 수정일 2025.08.16